쪽지와 사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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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웃 일본은 요즘 한 지방법원장의「쪽지사건」으로 떠들썩하고 있다. 15일자 조일신간은 1면의 「톱」으로 그 문제를 다루었다. 발단은「삽보로」의 지법원장 평하씨가 동지법의 한판사에게「나이키기지설치반대소송」에서『농림상의 재량을 존중해달라』는 서한을 보낸데에 있다.「농림상의 재량」이란이 기지고치지역의 보안림을 해제하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을 모으는 것은 그 나라 농림상의 입장이 아니다. 지법원장의 한 장 쪽지 사건을 놓고 일본의 제도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사회 여론이 술렁거리고 있는, 그 「사법분위기」이다. 더구나 이와 같은 일이 사회의 여론에 호소되어 맹렬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법조인들은『그런 멍텅구리 같으니라구!』하는 단호한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학계도 역시『설마 그럴리가…』하는「코멘트」를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헌법에도「재판상의 독립」은 엄연히 명시되어 있다. 헌법98조는 『법관은 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했다. 「바이마르」 헌법(102조)은『법관은 독립이며 법률에만 구속된다』 고 좀 더 간결하고 선명한 규정을 하고 있지만, 우리헌법도 그 뜻에 있어서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법관의 독립이란『법에의 구속』『양심에의 구속』『모든 지령에서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케이스」는『재판과 정치』와의「델리키트」한 관계를 암시하는 듯한「뉘앙스」를 풍기고 있어 우리의 주목을 끈다. 국회긴장기에행방불명이 되어 야당의원들의 좋은 시비거리로 등장했던 임모의원의 향배가 그것이다. 그는 태풍일과후 불쑥 나타나서『난해한 한마디 말』을 남겨놓고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18일 자신의 재판(선거소송에 계류중임)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정치적거취를 분명히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 정치인의 소신이 재판의 결과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설마 정치적 재판을 받고 있다는 묵시적 발언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비단 선거소송의 경우만을 두고 사법권의 독립을 말하기엔 너무 한가하다. 한낱 지법원장의 쪽지가 사회적 물의로 등장하는 그 쪽의 사법현실이 우리의 눈을 크게 뜨게 하는 것은 어딘지「아이러니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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