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열전구 퇴출…1887년 첫 불 켠 '건달불' 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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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3월 초순 저녁 어스름이 짙게 깔린 경복궁 내 건청궁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깜빡깜빡하는가 싶더니, 처음 보는 눈부신 조명이 갑자기 주위를 밝혔다. 주위에 모여든 남녀노소들이 “와아~!” 하고 모두 놀랐고, 더러는 두려운 나머지 야틈을 타 숨어서 이 신기한 장면을 바라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백열전구가 첫 불을 밝힌 순간을 『한국현대사-민족의 저항』(신구문화사)에는 이렇게 묘사돼 있다. 1879년 토머스 에디슨과 영국의 조셉 윌슨 스완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뒤 8년 만의 일이었다. 물류 유통이 더디던 시절인 점을 감안하면 꽤 이르게 한국에 상륙했다. 당시 문명의 총아였던 이 시설은 에디슨전등회사가 가설했다. 에디슨사는 동양에서 처음 가설되는 발전·전등시설이란 점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면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장비로 설치했다. 16촉광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한다. 1894년에는 창덕궁에 제2전등소가 세워졌다. 발전용량이 경복궁 시설보다 세 배나 컸다.

 당시 건청궁의 발전기는 증기식이었다. 향원정 연못의 물을 끌어 석탄을 연료로 돌렸다. 기계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 전등에는 온갖 별칭이 붙었다. 툭하면 꺼지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게 꼭 건달을 닮았다고 해서 ‘건달불(乾達火)’이라고 했고, 발전기 가동으로 연못의 수온이 올라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자 물고기를 찐다는 뜻의 ‘증어(蒸漁)’라고 불렸다. 또 연못 물을 먹고 건청궁 처마 밑을 벌겋게 달군다고 ‘물불’, 묘하다고 ‘묘화(妙火)’, 괴상한 불빛이라며 ‘괴화(愧火)’라고도 했다.

 이 백열전구가 내년부터 한국에서 사라진다. 건청궁에 불을 밝힌 지 127년 만의 소등(消燈)이다. 이미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2008년 제4차 에너지이용합리화 기본계획에서 백열전구를 퇴출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계획에 따라 지난해 1월부터 70W 이상 150W 미만 백열전구가 시중에서 사라졌고, 내년 1월부터는 25W 이상 70W 미만 백열전구도 생산과 수입이 전면 금지된다. 완전히 퇴출되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백열전구는 형광등이나 발광다이오드(LED) 램프 같은 새로운 조명기기에 밀려 사라져갔다. 전력을 너무 많이 먹는 데다 수명도 짧았던 탓이다. 백열전구에 투입되는 전력량 가운데 5%만이 불을 밝히는 데 쓰인다. 나머지 95%는 열에너지로 발산된다. 낭비의 대명사로 낙인찍힐 만했다.

 외국에서도 백열전구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2007년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에서는 백열전구 퇴출 권고가 결의됐다. 에너지절약정책의 일환이다.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단계적으로 퇴출작업을 추진 중이다.

 백열전구가 고효율 전구로 대체되면 연간 50만~65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1800GWh)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산업부는 보고 있다. 전력부하도 200㎿ 이상일 것으로 전망한다. 또 현재 3000만 개 정도의 백열전구가 보급돼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부분 재래상가나 양계농가에서 쓰인다. 백열전구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는 한 곳뿐이며, 주로 장식용을 만든다. 유통 중인 백열전구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된 것들이다. 산업부 채희봉 에너지수요관리정책단장은 “복지시설이나 저소득층 등에 322억원을 지원해 LED 조명으로 교체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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