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과 일면식 없어, 그래도 변호 자청한 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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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씨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이번 일을 맡겠다고 결심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다.”

 김석한(64·사진) 변호사는 미국의 대형 로펌인 ‘애킨 검프’의 수석 파트너다. 국제법과 통상 분야 전문가다. 워싱턴에 사무실을 둔 애킨 검프는 1945년 설립된 국제법 전문 로펌이고 변호사 수만 850여 명에 달한다. 정부와 관련된 소송·로비에서 미국 내 최고 로펌 중 하나다.

 그런 회사의 수석 파트너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의혹 사건을 변호하겠다고 나섰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13일 워싱턴의 한 식당에서 김 변호사를 만나 속 이야기를 들었다.

 “윤씨가 만일 기소된다면 미국 법정에서 이 문제가 다뤄진다. 그것도 수도인 워싱턴에서. 그 순간부터 윤씨는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청와대의 전 대변인으로 이슈화된다. 국가의 위신 문제로 변모하는 셈이다.”

 지난 5월 경범죄(misdemeanor)로 신고된 이번 사건의 수사는 이례적으로 장기화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워싱턴 경찰은 “수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사건이 정식으로 기소될지에 대해선 알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만일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김 변호사는 미국과 한국의 법 문화 간의 차이점을 강조했다.

 “미국에선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필요한 증인과 참고인을 모두 부른다. 청와대와 주미 한국대사관 등의 전·현직 인물들이 대거 법정에 호출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게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김 변호사는 지난달 한국에 출장 간 김에 윤 전 대변인을 만났다고 한다. 윤 전 대변인의 부인도 동석한 자리에서 김 변호사는 자청해 무료 변론을 맡겠다고 했다. “ 순수한 뜻에서 이번 사건을 맡겠다는 의미다. 워싱턴에서 미국 법에 따라 재판하고, 한·미 관계를 지켜봐 온 입장에서 국익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했다. 한번 훼손된 국격은 회복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는 “한국 정부 입장에선 윤씨의 행위가 괘씸하겠지만 지금으로선 사건을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고 빨리 조용히 마무리짓는 게 중요하다. 아시아나항공 사고도 시간이 지나며 미국 언론에선 한국인 또는 한국의 문화로 확산되고 있지 않나.”

 김 변호사는 지난해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호원들이 중남미 콜롬비아에서 성추문 사건을 일으켰을 때 백악관이 나서 신속하게 사건을 마무리한 예도 들었다.

 “미국이 경호원들을 비호하기 위해 그랬겠는가. 콜롬비아 법정에 세워질 경우 훼손될 국가 이미지를 생각해서다. 만일 백악관 대변인이 한국에서 이런 사건을 일으켰다면 미국 정부는 어떻게든 미국으로 데려와 처벌하려고 했을 거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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