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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마트 사회로 가자] "우리 함께 가자, 친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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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전남 장성 축령산 ‘치유의 숲’을 찾은 휴마트 인성스쿨 참가 학생들이 활짝 웃으며 환호하고 있다. 인성스쿨은 학생들이 감사와 배려·봉사의 가치를 생활 속에서 배울 수 있도록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장성=오종택 기자]

국내 최초의 인성학교인 ‘휴마트 인성스쿨’이 지난 11일 문을 열었다. 대한민국 인성교육의 틀을 바꾸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3월 정·관계와 기업, 시민사회, 중앙일보가 함께 시작한 ‘휴마트 인성교육 캠페인’의 일환이다. 휴마트 인성스쿨에서는 초·중학생들이 2박3일 동안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며 존중과 배려, 협동과 나눔 등을 배운다. 휴마트 인성스쿨은 전남도·장성군이 기증한 폐교 시설을 리모델링해 본지와 함께 KT 등 20여 개 기업의 사회공헌네트워크인 드림투게더가 운영을 맡았다.
“친구야. 우리 정상까지 꼭 함께 가자.”

 지난 12일 전남 장성군 축령산 입구. 국내 최대 편백나무 조림지인 ‘치유의 숲’까지 2㎞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여중생 42명이 올랐다. 도시의 평지에만 익숙한 아이들에게 20도 경사의 꼬불꼬불한 산길은 험하게만 느껴졌다. “더 이상 못 갈 거 같아.” 임혜림(14·서울 연신중2)양이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뒤따라오던 나경민(13·서울 정원여중2)양과 박아현(14·전남 장성남중2)양이 두 손을 내밀었다.

첫째 날 열린 미니 운동회에서 학생들이 공을 굴리는 모습. 각자 다른 지역, 다른 학교에서 온 학생들은 함께 뛰놀며 배려와 협동을 배웠다.

 “우리 같이 가자,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도 있잖아.” 두 여학생은 임양을 부축해 일으켰다. 셋은 힘들 때마다 서로를 밀어주며 올라갔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즈음 하늘 높이 뻗은 편백나무 숲이 펼쳐졌다. 2.8㎢ 면적에 250만 그루가 들어찬 ‘치유의 숲’이었다.

 “두 팔을 벌려 바람의 소리를 느껴봐요. 뭐라고 속삭이고 있죠?” 숲치유사 최효정(여·31)씨의 말에 학생들이 눈을 감았다. “매일 차 소리, 에어컨 바람에만 익숙했는데 나무들이 ‘안녕’ 하고 반겨주는 것 같아요.” 최고운(14·서울 정원여중2) 양이 풀썩 나뭇잎 위에 누우며 말했다.

 학생들은 숲 구석구석을 누비며 새소리와 물소리를 들었다. 태어나 처음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튼 지빠귀 가족도 만났다. 두 시간 동안 아이들은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연을 느끼며 ‘힐링’의 시간을 보냈다. 또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나 혼자’가 아닌 ‘우리 함께’의 의미를 깨달았다.

둘째 날 치유의 숲을 찾은 학생들이 맨발로 숲 사이를 걷는 모습. 도시의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흙의 감촉은 생소했다.

 학교도 사는 곳도 다른 42명의 아이들은 전날 처음 만났다. 11일 개교한 ‘휴마트 인성스쿨’에서다. 2박3일 동안 아이들은 맘껏 뛰놀며 인성의 중요한 덕목들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첫날 운동회에서는 6개 조로 나눠 ‘배려’의 의미를 학습했다. 2인3각 달리기 시간, 장효정(14·전남 장성여중2)양과 채지원(14·서울 동도중2)양이 서로 앞서 나가려다 넘어졌다. 다시 일어난 둘은 이번엔 손을 꼭 잡고 발을 맞추기 시작했다. 두 학생은 “서로를 배려하니 더 빨리 갈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풍선 주고받기와 투호·비석치기 등을 하며 ‘팀워크’의 중요성을 느꼈다.

둘째 날 전북 고창군 상하목장을 찾은 학생들이 송아지에게 직접 우유를 먹이는 모습.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함께 어울리는 법도 배웠다. 엄마가 필리핀 사람인 유한미(14·전남 약수중2)양은 처음엔 이어폰을 꽂은 채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 몸을 부대끼고 게임을 하며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유양은 림보(가로로 놓인 막대 밑으로 허리를 뒤로 꺾어 지나가는 게임)에서 85㎝ 높이를 통과하며 스타가 됐다. 어른 키만한 공을 두 명이 함께 굴리는 게임을 할 땐 옆에 있던 우승연(13·서울 홍대부속여중2)양이 넘어지자 일으켜주기도 했다. 각자 가진 도구를 모아 무인도를 탈출하는 가상 ‘무인도 체험’ 시간에는 협동의 가치를 배웠다. 깊은 밤 촛불의식 시간에는 서로의 꿈을 얘기했다.

 자연체험 시간도 이어졌다. 둘째 날 ‘축령산 걷기’ 후 고창의 상하목장을 방문한 아이들은 송아지에게 직접 우유를 주고 젖소의 젖을 직접 짜보기도 했다. 처음 송아지를 본 이채원(14·서울 정원여중2)양은 “앞으론 우유 한 방울도 버리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 날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도 아이들은 얘기꽃을 피웠다. 친구들과 축령산에 올랐던 일을 떠올린 임혜림양은 “함께 갈 때 더 멀리, 또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인성스쿨 현장 책임자인 드림투게더 이종일(34) 사무국장은 “처음엔 제 것 챙기기만 바빴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챙겨주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인솔한 서울 연신중 김진실(여·30) 교사도 “아이들에게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게 해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장성=윤석만·이한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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