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끌어올린 WTI … 두바이유 제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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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트유 > 두바이유 > WTI’.

 요동치는 국제 원유시장에서도 2년반 동안 꿈쩍하지 없던 이 부등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 경기회복세에 힘입어 WTI(서부 텍사스유)가 두바이유를 추월하며 ‘탈꼴찌’를 선언했고, 브렌트유까지 제칠 기세다.

 14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WTI 가격은 5일 중동산 두바이유를 추월했고, 12일에는 배럴당 2.5달러까지 격차를 벌렸다. WTI가 두바이유보다 비싸진 것은 2011년 1월 3일 이후 처음이다. 또 WTI는 북해산 브렌트유와의 격차를 10일 1.99 달러까지 좁혔다. WTI는 2010년 8월 16일 이후 브렌트유보다 항상 가격이 낮았다.

 올 3월만 해도 WTI의 탈꼴찌는 쉽지 않아 보였다. 브렌트유보다는 배럴당 20달러, 두바이유보다는 15달러나 저렴했다. 하지만 원유가가 4월 중순을 저점으로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WTI는 17%가량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브렌트유(8%)와 두바이유(4%)의 상승폭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세 유종(油種)의 대접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유종별 주 수요처의 경제상황을 반영한 결과다. 브렌트유는 북해 지역의 브렌트·티슬·휴톤 등 9개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다. 유럽 원유시장의 가격 기준이 된다. 그런데 유럽의 원유 수요가 온실가스 배출 규제에다 유럽 경기 침체로 시원찮다. 두바이유도 중국의 경기둔화 영향으로 상승폭이 주춤하다. 2005∼2010년 연평균 6.5%씩 증가한 중국의 원유 수요는 올해 4.1%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반면에 헤지펀드는 WTI의 상승에 베팅하고 있다. 미국의 경기회복세 때문이다. 대우증권 손재현 연구원은 “최근 미국의 정제 가동률이 상승했음에도 원유와 휘발유 재고가 모두 감소하고 있다”며 “경기회복에 따른 미국의 양호한 석유 수요가 WTI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다 미국의 오일허브인 오클라호마주 쿠싱 지역에서 원유 재고량이 감소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쿠싱 지역은 2009년 이후 원유생산이 크게 증가했지만 송유관 부족으로 유출이 부족해 병목현상이 심했다. 이후 시작된 송유관 증설 프로젝트가 최근 완료되면서 재고가 빠르게 줄고 있는데 이게 WTI 상승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

 전문가는 이런 가격 역전을 가격 정상화의 과정으로 본다. 미국 텍사스 서부와 뉴멕시코 동남부에서 생산되는 WTI는 저유황 경질유로 품질이 뛰어나다. 따라서 2007년만 해도 두바이유보다 배럴당 약 7 달러, 브렌트유보다는 2달러가량 비쌌다. 하지만 중국의 급성장과 석유수출국기구의 감산, 미국 경기 침체가 겹치며 고유황 중질유인 두바이유보다도 많게는 20달러 이상 낮은 ‘굴욕’을 겪어왔다.

 국제금융센터 오정석 연구원은 “WTI의 상대적 약세가 종료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된다”며 “장기적으로 WTI>브렌트>두바이 순으로 가격이 재역전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두바이유 가격 안정은 도입 원유의 80% 이상을 중동에서 들여오는 한국으로선 반가운 소식이다. 유진투자증권 곽진희 연구원은 “국내 정유사 실적에도 긍정적”이라고 전망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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