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미국 국민들 "테러가 무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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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웬만한 위험은 위험이라고 느끼지 않는 우리와는 달리 미국 사람들은 위험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 당국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정도에 맞춰 바로 바로 행동한다.

이라크전이 임박하면서 미국 내 테러경계 수준이 다섯단계 중 두번째로 높은 '오렌지'로 높아지면서 사회 전체가 행동양식을 바꾸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펜실베이니아역엔 탐지견을 앞세운 군인들이 깔리고, 호텔이나 지하철 등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엔 경찰력이 증원되는 게 눈에 보인다.

이런 가운데 미국 방위의 임무를 띠고 신설된 국토안보부가 국민들에게 유사시에 필요한 물건들을 거론하자 상점에선 그 품목들이 금세 동나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대형 접착테이프가 그중 하나다. 독가스나 세균 등 생화학 테러시 창문 틈새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통조림 식품과 방독면이 불티나게 팔리고 생수와 배터리는 없어서 못팔 지경이라고 한다. 테러리스트들이 병원을 대상으로 청산가리 공격을 할지도 모른다고 연방수사국(FBI)이 밝히자 병원들은 해독제를 준비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이라크전이 다가올수록 미국 사회가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CBS방송과 뉴욕타임스가 지난 10~11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앞으로 수개월 안에 테러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응답자 비율이 82%에 달해 2001년 9.11테러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테러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답한 비율도 35%로 전달 조사 때의 14%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사실 이번 이라크전은 말이 전쟁이지 미국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끝날 게 확실하다. 미국 주도 아래 10년 이상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이라크의 군사력은 미국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때려 누이면 싸움은 끝난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의 얼굴을 스치는 저 불안의 그림자는 무얼 말하는 걸까. 적을 공격하면 할수록 또다른 공포에 떨어야 한다면 결국 그 방법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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