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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앞엔 거울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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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석 달 사이에 타의로 옷을 벗은 고위 공직자가 4명이나 된다.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 이헌재 경제부총리,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낙마한 이유는 제대로 수신제가(修身齊家)를 못한 탓이다. 당사자들로서야 억울한 구석이 없지 않을 것이다. 1960, 70년대 간난의 시대를 남들과 똑같이 살아왔는데 그깟 일로 고관대작을 그만 둬야 하다니. 재테크 수단으로 주소 좀 옮겨 부동산 사고,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자식 하나 그럴듯한 대학에 입학시킨 게 어때서.

그런 생각을 그들이 아직도 갖고 있다면 그건 잘못이다. 시대의 흐름이 더 이상 부패한 지도층을 원하지 않는다. 권한을 행사하는 크기에 걸맞은 강도 높은 책임과 의무, 도덕성을 요구한다.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질의에 응한 성인 남녀 700명 가운데 85.3%가 적격성 시비에 휩싸였던 부총리.장관.인권위원장의 사퇴 도미노 현상에 대해 청렴사회로 가기 위해 겪어야 할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답변한다. 반면 일각에서는 투명사회도 좋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직할 인물난을 우려한다. 쓸 만하다 싶으면 흠집이 있고, 괜찮다 싶으면 "털면 먼지 안 나랴, 망신살 뻗칠 일 있느냐"고 고사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한다. 현직 고관들도 좌불안석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부총리 자리, 장관직이 공석이 될까 걱정하는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강 장관이 사퇴하자마자 자천타천으로 거론된 후임자는 무려 10여 명을 웃돈다. 면면이 쟁쟁하기 그지없다. 그중에는 장관이 되는 순간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힘든 인사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주제넘고,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면서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비가 많은 것이다. 지나치게 높은 도덕적 잣대로 인해 능력있는 인물이 배제되고 탈락한다고 안달할 일이 결코 아니다. 인사 검증 시스템을 법제화하고 체계화해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면 된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다고, 내 편이라고, 실세가 추천했다고, 경력이 화려했다고 등은 죄다 쓸데없는 기준이다.

이처럼 도덕성이 고위 공직자 임명의 주요한 기준으로 점차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언론이 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강 장관은 중앙일보가 "인천공항 사장 때 처제.동창, 공항 주변 땅 매입"을, 최 위원장은 월간지 신동아가 '부동산 투기 의혹'을, 이 경제부총리는 한겨레가 "경기 광주와 전북 고창 땅 매입 때 이 부총리 부인 위장 전입 의혹"을 처음으로 각각 보도한 뒤 언론의 의혹 제기가 잇따르자 사직한 것이다. 또 이 교육부총리는 장남의 부정입학 의혹과 청와대 비서실장과 관계를 파헤친 동아일보의 기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중도하차한 셈이다. 권력의 횡포를 견제하고 정부를 감시하고 각 분야의 부조리를 고발함으로써 국가와 사회 발전의 견인차 노릇을 해야 한다는 신문의 고전적인 임무에 충실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감시와 고발이야말로 국제적으로 부패지수가 상위권에 속하는 한국사회에서 신문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이자 덕목이다. 설사 정부의 무성의하고 부실한 브리핑으로 인해 정보 접근이 힘들더라도, 독소 조항으로 가득 찬 신문법이 시행된다 해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로지 독자를 상대로 제작하면 된다. 오는 7일 제49회를 맞는 '신문의 날' 표어대로 '독자 앞엔 등불처럼, 세상 앞엔 거울처럼' 행동해야 한다. 철저하게 독립적인 입장에 서서 무엇이든 잘못된 사안은 정확하게 끈기있게 규명하고 비판하는 노력을 조금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권력과 광고주와 시민단체의 통제 시도를 이겨내고 독자의 신뢰도 확보할 수 있다.

도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