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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대운하 염두에 두고 추진 … MB 의중 반영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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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명박정부는 사실상 대운하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4대 강 사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해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추진됐다.’ 지난 1월 7일부터 4대 강 사업에 대해 집중감사를 벌여온 감사원의 결론이다.

 감사원은 10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4대 강 살리기 사업 설계·시공 일괄입찰 등 주요계약 집행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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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원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국토부가 ‘4대 강 사업계획’(2009년 6월 발표)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여건 변화에 따라 추후 대운하 재추진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대통령실의 요청을 받았고 ▶대운하 사업의 공식적인 중단(2008년 6월) 이후에도 수심을 깊게 파는 대운하 계획의 반영 여부를 검토했으며 ▶한꺼번에 많은 공사를 발주해 건설사의 경쟁을 제한하는 등 건설사의 담합 빌미를 제공했고 ▶이에 따라 현대건설·대우건설·삼성물산·GS건설·대림산업 등 5개 대형 건설사가 경부운하 컨소시엄을 유지한 채 담합을 할 수 있도록 원인 제공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대운하 사업의 기초를 닦으려는 정부의 묵인 아래 대운하 사업을 준비하던 건설사가 4대 강 사업에서 나눠먹기식 담합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감사원이 4대 강 사업을 대운하 사업의 전초 단계로 파악한 근거는 낙동강 구간의 최소수심(6m)과 사업구간(낙동강 하구→상주) 등이 대운하 계획(최소수심 6.1m)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이를 “추후 운하 추진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보면서 “준설·보(洑)의 설치 규모를 확대함에 따라 대운하 추진 의혹 논란이 지속되고 최소수심 유지에 필요 이상의 관리비용이 소요돼 수질관리의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재해 감사원 제1사무차장은 브리핑에서 “(4대 강 사업에 대한) 국가균형발전위원회(균형위) 안이 2008년 12월 15일 대통령에게 보고되기 전 12월 2일에 사전보고 됐고, 그때 이 전 대통령이 ‘수심이 5~6m 정도 되도록 하라’고 했다”며 “(4대 강 사업을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추진하라는) 직접적인 지시를 확보하진 못했지만,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하지 않았느냐 판단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 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했다는 근거로 4대 강 사업을 담당했던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실 행정관들을 통한 계획 변경도 제시했다.

 당초 4대 강 살리기 추진단은 낙동강 구간의 최소수심을 4m로 하려 했으나 2009년 4월 17일 국토부 차관 주재로 열린 긴급회의에 청와대 행정관이 참석해 “물그릇(준설을 통한 수량 확보)을 4.8억㎥에서 8억㎥로 늘려야 한다”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4.8억㎥에서 8억㎥로 늘리는 걸) 역추산해 보면 대충 그런(최소수심이 4m에서 6m로 깊어지는) 걸 염두에 두고 하지 않았느냐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로 긴급회의 뒤 낙동강 구간의 최소수심이 6m로 깊어지도록 준설 규모와 보 설치 계획이 변경됐고, 그해 4월 27일 대통령에게 보고된 뒤 같은 해 6월 8일 4대 강 사업계획이 최종 확정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4대 강 사업을 담당한 행정관들은 (이 전 대통령의 모교인) 동지상고 출신들”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배임이나 직권남용 등으로 조치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2009년 6월 국토부와 수자원공사가 발주한 1차 턴키(설계·시공 일괄 입찰) 사업의 담합 내용을 적발한 뒤 2011년 2월 심사보고서 초안을 작성하고도 이유 없이 2012년 3월까지 추가 조사와 사후 처리를 중단했다고 지적했다. 또 그해 5월 공정위 전체회의에선 공정위 사무처가 내놓은 ‘과징금 1561억원, 6개 업체 고발’ 조치를 ‘과징금 1115억원(446억원 삭감), 고발 배제’로 바꿔 의결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현대건설이 호텔 모임을 만들고 협약서를 작성하는 등 담합을 주도한 증거를 확보해놓고도 과징금을 가중(최대 30%, 66억원)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꼽았다.

 감사원의 발표는 정치적 파장을 예고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기자들과 만나 “감사 결과가 사실이라면 국가에 엄청난 손해를 입힌 큰 일”이라며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잘못된 부분은 잘못된 대로 알리고, 바로잡아야 할 것은 바로잡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야 할 것”이라며 “관계 부처에선 더 이상 피해가 안 가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4대강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미경 의원) 소속 의원들은 성명서를 내고 “대운하를 재추진하기 위해 4대 강 사업의 규모를 확대해 놓고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며 “국회에 출석해 4대 강 사업에 대해 거짓 증언한 당시 총리(김황식), 국토부 장관(권도엽·정종환) 등을 위증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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