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불」은 안꺼진다|전 체코 공산당서기장「두브체크」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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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체코」에서 일어난 불길은 말살되지 않을 것이다.』 소련의「체코」침공을 계기로 「체코」공산당서기장 자리서 실각된 「알렉산도르·두브체크」는 실각 후 서방기자와의 단독회견에서 이와같이 첫마디를 말했다. 소련의 압력에 대항, 작년8월 「바르샤바」조약군대의「체코」침공으로 세계를 진동시켰으나 「두브체크」는 그동안 서방기자와 한번도 회견을 한 적이 없었다. 지금은 「체코」국민의 자유와 희망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그는 기자와의 회견에서 여러질문에 솔직히 대답해 주었다.
-당신은 당에서 쫓겨나온 인물이라고 볼수 있는데. 1948년「체코」에 공산당정권이 수립되었고 당에서 맹활약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난 1950년대에 당에서 권력을 남용하여 당신친소 여러명이 투옥되거나 처형된 정치적재판에 왜 항의하지 않았는가.
『사실과는 다르다. 당신은 나를 공산주의자라는 입장에서 봐야한다. 젊었을 때 당지구에 근무했었으니 당의 중앙집권층의 압력에 항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50년대에 나는 사형수들에 대한 유죄의 증거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후에 나는 무엇인가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점이 바로 그 정치적재판에 관해 내가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이유이다.
1953년 나는「체코」의회의 대표자로 「슬로바크」공산당수 「스미드케」의 장례식때 중대한 연설을 했다. 내가 알기로는 「슬로바크」공산당수 겸 「슬로바크」국가위원회의장인 「스미드케」는 당에 충성을 다했는데 그는 대대적인 비판을 받고 돌연 숙청되었다.
-1962년 당신은 비밀리에 독재를 물리치고 경찰조직을 무너뜨려 「노브트니」의 궁예체제를 전북시키려 했었다는데….
『그런 문제를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러나 당은 부정을 제거하지 못했고 적절한 경제정책을 세우지 못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무엇인가 잘못된게 있다고 생각했었다. 「체코」국민은 눌라울 만큼 교육이 잘돼있고 영리하다. 우리는 이와같은 국민이 행동하게 했다.
-새로운 종교의 대변자로 당신은 『인간적인 면을 깃들인 사회주의』(Socialism with a human face)를 수출하려 했다고 어떤 사람들은 말하던데?
『그런 생각은 잘못이다. 당면문제는 「체코」국민들의 과업이고 우리들의 체제를 다른 국가에 제안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내가 계획했던 것은 아직 생생하게 살아있고 「체코」의 근본적인 정치노선은 변경되지 않았다. 왜 변경시키겠는가. 「체코」에서 일어났던 것들은 말살될수 없다. 모든것은 우리가 원한대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체코」국민들은 또다른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발전이 있을뿐이고 후퇴란 있올수 없다.』
-「두브체크」씨, 당신은 민주주의자 같은데?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적과 싸울 필요가 있으면 싸우겠다. 내가 반공산주의를 걷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데 나의 정책이 우리의 사회주의국가의 동맹과 친선을 떠나서 발전할수 있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그러나 나의 정책을 포기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당신은 소련의 지도자들을 잘알면서, 더구나 「브레즈네프」는 「모스크바」당학교에서부터 잘알고 있었는데도 어떻게 그들이 당신의 정책을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소련의 감정을 상하는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체코」국민과 「슬로바크」당원들을 위해 일하러 했다.』
-작년8윌20일밤 당신이 체포될 당시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았는가?
『나는 군인이었다. 만일 일개인이 자기의 생명에 대한 위협을 느낄 정도라면 자기 몸을 돌보지 왜 내가 무엇을 할것인가를 생각하겠는가.』 루크지=본사독점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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