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고죄 없앴더니…성관계 꼼수계약서 등장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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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범죄 처벌 강화 이후 온라인상에 확산되고 있는 ‘성관계 표준 계약서’.

‘남녀 계약 당사자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으며 서로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요즘 온라인상에서 확산되고 있는 ‘성관계 표준 계약서’의 주요 내용이다. 이 계약서는 최근 성폭력 범죄 처벌 규정이 강화되면서 등장했다.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거나 나중에 고소를 취하하면 성범죄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한 친고죄 조항이 지난달 19일 폐지됐다. 이로 인해 제 3자가 고발하거나 검경이 인지수사에 착수해 성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성관계 표준 계약서는 강화된 성폭력 처벌 관련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꼼수’라는 지적이다.

 작성자와 출처가 불분명한 성관계 표준 계약서는 페이스북·카카오톡 등 SNS와 인터넷 카페 등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계약서는 ▶강요·협박·약취·유인·매매춘 등의 사실이 없음 ▶상호 민·형사상 성인임을 고지했음 ▶임신을 해도 남자 측에 책임을 묻지 않음 ▶사진촬영, 녹음, 동영상 촬영 등의 행위를 일절 하지 않음 ▶일회성 만남을 원칙으로 하고 결혼·약혼 등을 약속한 사실이 없음 ▶성관계 사실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지 않음 등 총 9개 조항이 담겨 있다. 또 ‘이를 어길 시 모든 민·형사 소송에 면책권을 갖고 1억원을 배상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명칭만 ‘계약서’일 뿐 실상은 “문란한 성문화를 부추기는 비뚤어진 성의식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김모(30·경기도 안양시)씨는 “계약서에 깔려 있는 성의식은 남성들의 성적 본능을 당연시하면서 여성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며 “결국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성문제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아이디 ‘강한 ***’는 “친고죄 폐지로 합의하에 성관계를 해도 고소당하면 꼼짝없이 당하는 것 아니냐”며 “전자발찌 안 차려면 계약서라도 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계약서의 법적 효력도 논란이다. 강성두 변호사는 “수사 단계에서 증거물로 사용될 수는 있겠지만 강압이나 위계 여부 등을 두루 따져봐야 하는 만큼 법적인 효력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남녀가 합의하에 작성한 계약서인 만큼 효력을 인정해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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