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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정글」을 뚫고|캄보디아서 돌아온 박정환 소위 수기(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베트콩」들은 나와 채규창씨, 그리고 월남해병대사병등 3명만 한방으로 따로 수용했다.
그방은 관운장인 듯한 한대장군의 초상을 모시고 있었으며 그 앞에 향불을 피워놓고 있었다.

<족자 거꾸로 걸고 의식>
그 이튿날 아침은 부락여인들이 끓여다준 죽을 약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조금 있으니까 긴 백발수염과 상투를 땋아 올린 늙은 노인이 술병을 가지고 들어와서 제단에 놓고 큰절을 하며 기도했다. 「베트콩」들도 그런 의식을 숭배하는 듯 노인이 절을 할때는 경건한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나는 한문족자 하나가 거꾸로 붙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손짓으로 그것을 바로잡으라고 일러주기도 했다.
이윽고 제사가 끝나자 노인은 독한 술을 따라 나에게 한잔 권했으나 나는 술을 입에 대지 못하기 때문에 사양했다. 노인은 그 술을 채씨에게도 권했다. 채씨가 질겁을 한 표정으로 거절한데도 노인은 오히려 은근한 태도로 술을 자꾸 권해 승강이마저 벌였다. 나는 채씨에게 『왜 술을 마시지 않았느냐』고 물으니까 채씨는 『만약 술을 마신뒤 우리가 취했을때 놈들이 끌어내어 총살시키면 어떻게 할것이냐』고 공포에 질렸다.

<꼬마들이 과일 갖다줘>
그날 낮. 한 「베트콩」은 주월 한국군이 발간한 한국어와 월남어가 섞인 귀순「비라」를 들고 와서『이것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월남어로 내게 물었을때 『좋은것』이라고 하자 그는 매우 얼굴이 붉어진채 그종이를 빡빡 찢고는 금방 화가나 총을 잡고는 나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채씨와 나는 속으로 놀랐다.
낮동안 「아까보」(AK총)를 멘 여자「베트콩」을 비롯한 많은 부락민들이 와서 우리들에게 여려가지 말을 물었다. 그들의 모습은 몹시 전쟁에 지친 모습이었다. 검은색 복장을 한 모습이 한층 초라해 보였으며 내가 그들의 물음에 월남어로 조금씩 답하는 것에 대해 좋아들 했다.
어떤「베트콩」들은「루비」라는 담배와「ARA」라는 「캄보디아」에서 밀수입된 담배를 몇개비씩 주었다. 특히 늙은 노인과 꼬마들은 우리들에게 심히 동정적이었으며 가끔 과일도 갔다 주었다.

<월남군포로 세뇌공작>
같이 있던 월남군 포로1명은 우리들 막사 바로앞 약20m떨어진 절간으로 옮겨갔다. 월남어로 「학탑」(사상교육)이라는 교육을 받으러갔으나 우리들에게는 아직 아무런 교육도 시키지 않았다
밤이면 희미한 등잔불을 켜두고「AK」(중공식무기)를 든「베트콩」들이 몹시 우리들을 경계했다. 많은 모기가 우리의 팔과 다리를 물어 뜯어서 나는 밀가루부대로 발을 싸감고 잠을 청할 정도였다.
채씨와 나는 그때까지 서로 존칭어를 썼으나 나는 채씨에게 우리는 같은 운명이며, 그가 나보다 나이도 많으니 내게 존칭어를 쓰지 말라고 하고 나는 그때부터 형이라 불렀다. 그리고 탈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탈출 할때는 같이 탈출하기로 굳게 약속했다. 며칠을 그곳에서 지냈다. 하루는 저녁때 갑자기 약40명의 월남군 포로와 우리를 밖으로 끌어내었다.

<서운해하던 여자아이>
언제나 내게「바나나」와 과자를 갖다주며 친절을 보이던 열댓살 먹은 처녀는 몹시 서운한듯 나를 쳐다보았다. 내팔은 이중으로 단단한「나일론」끈에 묶여졌다. 내신은 벗겨지고 강행군은 다시 시작되었다.
포성은 멀리서 은은히 울리고 가끔「헬리콥터」가 머리 위로 날고「제트」기가 날았지만「베트콩」들은 도시 겁을 내는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Ll9정찰기만을 몹시 겁을 내어 조그마한 나뭇가지를 꺾어 그것을 머리위에 얹은 후 쭈그리고 앉아 L19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어떤 계급이 좀 높은「베트콩」 은 목에 두른 노랑색과 녹색의 얼룩무늬가 박힌「머플러」를 엎어 쓰고 길바닥에 드러눕기도 하여 비행기의 정찰로부터 피하곤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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