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필기 안 해요, 수업에 집중 하려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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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훈군은 미리 학습 계획을 세우고 필기를 하는 일반적인 모범생과 달리 수업 중엔 수업 내용에만 집중한다, 대신 그 날 배운 내용은 집에 돌아와 문제풀이로 꼭 복습을 한다. [김경록 기자]

어느 학교든 전교 1등은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워 공부하고 노트필기를 완벽하게 하는 학생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산동중 3학년 전교 1등인 정승훈(14)군은 좀 다르다. 노트필기는 아예 하지 않는다. 짜놓은 계획표도 없다. 공부? 그냥 시간 날 때 한다.

 초등학교는 공식적으로 석차를 내지는 않지만 틀린 문항수로 대략 등수를 알 수 있다. 정군은 상탄초교(경기도 고양시 소재) 시절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거의 없다. 중학교 진학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번 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교 7등을 했다.

 

“오만했어요. 이 정도 공부하면 되겠지, 했는데 역시나 결과가 안 좋네요. 그래도 뭐 괜찮아요. 나태해지는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으니까요.”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표정은 밝았다. 모범생 중엔 점수 1~2점에 목숨이라도 걸겠다는 듯 자기를 들들 볶는 유형이 많은데 정군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성격이 둥글둥글해 친구 사이에 인기가 많다. 지난해까지 학급 반장을 했다. 공부가 제일 친한 친구인 여느 전교 1등과 비교하면 완전 별종이다.

 공부하는 방식도 이런 성격을 그대로 닮았다. 꽉 짜맞춘 계획표로 자기 자신을 옥죄는 법이 없다. 그때그때 필요하다고 판단하거나 하고 싶은 과목을 공부한다. 다만 시험기간 중엔 엄마가 대략의 계획표를 짜준다. 숱한 모범생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오답노트도 만들지 않는다. 틀린 문제는 바로 다시 풀어볼 뿐이다.

 정군은 “오답노트 정리할 시간에 문제 하나 더 푸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문제집을 풀며 자연스럽게 개념까지 익힌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집을 독특한 방식으로 구분한다. 얇은 문제집, 두꺼운 문제집, 평가문제집, 문항 수 많은 문제집 등이다. 정군이 말하는 얇은 문제집이란 문제 수는 적지만 심화문제가 많은 문제집이고, 두꺼운 문제집은 개념은 적은 대신 문제 수가 많아 연습용으로 좋은 문제집이다. 그런가 하면 평가문제집은 교과서 연계 문제집을 말하고, 문항 수 많은 문제집이란 모의고사용 문제집이란다. 출판사나 유형별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학습목적이 뭔지 확실히 파악한 후 자신만의 분류법을 만든 셈이다.

 정군은 수학과목조차 선행을 하지 않는다. 다만 평소 제 학년 심화문제를 푼다. 그러나 시험기간에는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 심화문제는 풀이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시험기간엔 스트레스만 받기 때문이다. 정군은 “시험기간에는 개념문제 위주로 푼다”며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동시에 자신감까지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수업시간 태도는 어떨까.

 정군은 필기보다 듣는 데 힘을 더 많이 쏟는다. 선생님이 따로 “반드시 체크하라”고 하지 않으면 절대 쓰지 않는다. 대신 선생님과 시선을 맞추고 질문에 열심히 답하며 집중한다. 필기에 신경 쓰다 중요한 내용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란다.

 사실 수업 중 필기하지 않는 우등생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 수업 후 쉬는 시간에 곧바로 노트 정리를 한다. 하지만 정군은 아예 안 한다. 대신 집에 돌아와 그날 배운 단원의 문제집은 꼭 푼다. 한 권이 아니라 수준별로 여러 권을 푼다. 쉬운 문제부터 어려운 문제까지 다양한 수준의 문제를 풀어야 본인의 이해도를 스스로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또 이렇게 하면 일부러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설명한 부분이 쉽게 이해되고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고 한다. 채점은 매일 엄마·아빠가 한다. 시험기간이면 문제집 분량이 늘어 채점하느라 새벽 1, 2시를 넘길 때도 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꼼꼼한 성격의 아빠는 서술형 문제가 많은 과학·수학을, 엄마는 그외 과목을 채점한다. 아빠는 완벽한 정답이 아니면 네모, 오답으로 볼 수도 있으면 세모로 표시한다고 한다. 네모로 표시한 문제는 부자가 정답을 두고 토론한다. 정군은 “아빠랑 문제집 푸는 시간이 꽤 재밌다”며 “채점은 반드시 아빠한테 부탁한다”고 했다.

 복습만큼 예습도 중요하게 챙긴다. 인강(인터넷 강의)으로 수학과 과학은 매주 2시간씩 한다. 국어와 사회·영어도 인강으로 공부한다. 다만 예습이 아니라 요약 강좌만 골라 시험기간에 듣는 형식으로 활용한다. 정군은 “자기 스타일에 맞는 강사를 선택하는 게 무작정 인기강사의 강의를 듣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정군은 “딱딱한 게 워낙 싫어 또래들이 쓰는 외계어를 섞어 쓰는 등 재미있는 강좌를 듣는 편이다”고 했다. 우선 맛보기 강좌를 통해 살펴본 후 결정한다.

 

시험기간에는 스마트폰에서 게임부터 싹 지운다. 친구랑 문자도 주고받지 않는다. 와이파이를 아예 꺼서 스마트폰 만지는 일을 최소화한다. 정군은 “어차피 해야 할 공부인데 하다 말고 놀면 찝찝하다”며 “시험기간만큼은 확실하게 집중하는 편”이라고 했다.

 정군의 엄마 김희정(43)씨는 “승훈이는 꼼꼼하거나 계획적인 성격은 아니다”며 “그런데도 스스로 알아서 잘한다”고 말했다.

 정군이 이런 나만의 공부법을 터득한 데는 사실 의류점을 하는 김씨 역할이 컸다. 전업주부처럼 챙기기가 어려워 애한테 맡겼더니 이게 긍정적 효과로 돌아왔다. 김씨는 어릴 때부터 교재선택은 물론 학원강습 여부까지 전권을 아들에게 줬다. 정군은 중1 때 영어학원을 다녔으나 그 이후는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있다. 정군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국어와 한문·일어·수학·과학 5과목을 학습지를 통해 공부한다. 초등 1학년 때부터 매일 꾸준히 하고 있다.

 정군은 “학습지는 매일 5~10분씩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에 학습 습관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정군은 살가운 딸 같은 외동아들이다. 하루 일과나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부모에게 재잘재잘 이야기를 잘한다. 그 무섭다는 중2병도 겪지 않았다. 비결이 뭘까.

 김씨는 “1년에 2~3번씩 가는 가족여행이 효과를 본 게 아닐까 싶다”며 “여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서로 대화하게 되고 공유하는 추억이 많다 보니 할 얘기가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군 가족은 정군이 4살 때 필리핀으로 가족여행을 한 후 매년 지역을 달리해 해외여행을 떠난다. 괌·사이판·푸껫·코타키나발루 등 30여 곳을 다녀왔다. 김씨는 “역사공부 차원에서 유적지로 여행 가는 가족이 많지만 우리는 스트레스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간다”고 말했다. 그래서 여행 관련 포트폴리오도 만들지 않는다. 정군은 “스펙용이 아니라 내가 뭘 느꼈느냐가 더 중요한 게 아니냐”며 “여행을 통해 다른 문화에 자연스럽게 다가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장래 희망이 의사라는 정군은 특목고를 갈 생각이 없다. 사교육 없이 터득한 혼자만의 공부법이 일반학교에서 더 잘 통할 것 같아서란다. 정군은 “특목고는 일반학교와 많이 다를 것”이라며 “솔직히 선행을 많이 한 친구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실망할까 걱정이 된다”고 털어놨다.

엄마의 즐겨찾기
중앙일보 江南通新(joongang.co.kr/gangnam) 및 열려라 공부: NIE 입시 정보를 주로 본다. 시간이 없어 카페·블로그에 자주 들어가지 못하는 대신 신문에서 정보를 얻는다. 엠베스트 입시설명회(www.mbest.co.kr): 발 빠른 입시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 아무리 바빠도 입시설명회에는 한 학기에 최소 한 번 이상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글=김소엽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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