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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지변도 부분 환불 가능한데 … 여행사, 무조건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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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 서초동에 사는 조남연(58·여)씨는 지난 5월 31일 C여행사를 통해 9일 일정으로 동유럽 6개국 단체관광을 떠났다. 독일로 향하던 비행기는 엔진 고장으로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불시착했다. 지난달 3일 간신히 독일 뮌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일정이 취소된 상태로 오스트리아 빈까지 밤새 달려갔다. 하지만 이번엔 호텔에 갇혔다. 버스 기사가 9시간 이상 휴식을 취해야 움직일 수 있다는 규정에 걸린 것이다. 결국 여행은 한국을 떠난 지 나흘이 지난 4일 오후 시작됐다. 관광일정만 따지면 하루 반나절이 날아갔다. 조씨는 귀국 후 부분 환불을 요청했지만 여행사는 “천재지변이라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여행상품 가격 235만원을 9등분해 1.5일분과 정신적 피해보상금 등 95만원을 청구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제야 여행사는 항공사에 요청해 3만 마일리지를 제공했다. 여행사 측은 “여행사의 직접적 책임은 없다”면서도 “도의적 차원에서 실비 환불이나 해당 비용만큼 서비스 교체는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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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연간 해외여행자 수는 1300만 명에 달한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관련 분쟁도 많아졌다. 한국여행업협회 여행불편처리센터에 접수된 신고건수는 2010년 910건에서 지난해 1280건으로 늘었다. 이 중엔 일정 변경 및 누락(111건), 부당요금 징수(66건) 등 금전적 피해도 많다. 하지만 여행 도중 입은 피해를 이유로 부분 환불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난해 환불을 받은 경우는 30건에 불과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마련한 표준약관에는 ‘천재지변, 전란, 정부의 명령, 운송·숙박기관 등의 파업·휴업 등으로 여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책임소재가 분명치 않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여행사와 합의에 실패할 경우 한국소비자원이나 여행불편처리센터에 신고하라고 조언한다.

 안지선(33·여)씨는 최근 H여행사를 통해 5일 일정으로 어머니에게 태국 여행을 선물했다. 하지만 안씨의 모친은 가이드가 환승공항에서 여유시간 동안 시내관광을 할 수 있는 ‘스톱오버’난에 체크하지 않는 바람에 방콕 땅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12시간 동안 공항에 묶여 있었다. 안씨는 여행사에 항의했다. 여행사 측은 가이드 잘못이 명백한 만큼 상품 가격에서 항공권 값을 제외한 나머지 5분의 1만 환불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씨 측은 3박5일 일정이니 항공권 포함 가격의 3분의 1을 환불하라고 맞섰다. 결국 여행불편처리위원회를 통한 분쟁조정을 거쳐 석 달 만에 항공권 포함 가격의 50%를 돌려받았다. 안씨는 “분쟁 처리 정보를 알기도 어렵고 절차도 복잡해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이유태 약관심사과장은 “현재 항공권이나 여행상품의 경우 출발 20일 전에는 상품가격의 10%를 배상하는 기준이 있지만 출발 이후 부분 환불에 대해서는 소비자분쟁 해결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송오식 교수는 “약관이 없더라도 계약법상 대가를 지불한 계약에 대해서는 담보책임이 존재한다”며 “여행상품의 하자로 계약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대금 감액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이달 중 상반기에 실시한 해외여행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출발 이후의 계약불이행에 대해서도 책임소재와 환불 규정 등을 표준약관에 명시하는 방안을 공정위에 건의할 계획이다.

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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