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한 경매 했다고 조작 … 100억 수수료 챙긴 수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2008년 7월 서울의 수협중앙회 A공판장에서 건어물을 팔던 K씨(52)는 공판장 측으로부터 강제 퇴거 조치를 당했다. 공판장 측에 경매 수수료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K씨 같은 중도매인들에게 허위로 경매 서류를 작성하게 하고 이를 토대로 수수료를 받아가는 게 이 공판장의 관행이었다. 마치 실제로 경매가 이뤄진 것처럼 서류를 꾸며 수수료를 징수하는 방식이었다.

 K씨는 그간 ‘울며 겨자 먹기’로 이 같은 부당한 관행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석 달째 수수료 납부가 밀리자 공판장 측에서 강제로 K씨의 영업장을 폐쇄시켰다. K씨는 “용역까지 동원해 영업 방해를 하며 영업장에서 강제로 몰아냈다”고 말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산물 중도매인들에게 허위로 경매 서류를 꾸미게 한 뒤 거액의 경매 수수료를 가로챈 수협중앙회 전·현직 임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허위로 작성된 경매 서류를 토대로 경매 수수료를 부당하게 받아 챙긴 혐의(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 위반)로 수협중앙회 법인과 수협 A공판장장 이모(55)씨 등 공판장 소속 전·현직 임원 1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2008년부터 최근까지 수협 A공판장에서 수산물 경매 업무를 담당하면서 중도매인 130여 명에게 친인척이나 거래처 등을 허위 출하자로 등록하게 하는 수법으로 서류상으로 경매가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 이들은 가짜로 작정된 경매 서류를 토대로 중도매인들에게 허위 낙찰 금액의 3~3.8%에 해당하는 경매 수수료(1인당 매달 60만~200만원)를 받아 5년간 약 100억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공판장 측은 중도매인별로 매달 1800만~3500만원씩 허위 경매 실적 기준을 정해 이를 채울 것을 강요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특히 공판장 측은 실적에 미치지 못한 중도매인의 경우 재계약 시 등록을 취소하거나 영업에 불리한 위치로 영업장을 옮기는 등 불이익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 A공판장에선 지난 5년간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경매는 한 건도 없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 공판장의 중도매인들은 산지 출하자로부터 정상적인 경매를 통해 물건을 낙찰받는 방식이 아니라 가락시장 등 다른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들여와 판매해 왔다고 한다.

 경찰은 공판장 측이 경매 실적을 올리기 위해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2011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A공판장의 허위 경매 사실이 기관 통보됐음에도 수협중앙회 측이 사실상 이를 묵인해준 것으로 보고 수협중앙회 법인도 입건 조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공판장 측이 중도매인들에게 부당하게 징수한 수수료는 개인 자금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고 공식 자금 내역으로 기록돼 수협중앙회로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수협중앙회 정지열 홍보실장은 “허위로 경매를 한 사실이 없으며 경매 서류를 가짜로 꾸민 적도 없다”며 “경찰 발표가 상당히 왜곡돼 있다”고 주장했다.

정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