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판·검사가 ‘사법 불신’ 키워서야 되겠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사법(司法)의 핵심은 믿음이다. 국민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다루는 판·검사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검찰 공소장도, 법원 판결문도 한낱 종이 조각일 뿐이다. 나아가 사법 불신은 사회 전체에 심각한 부작용을 남긴다. 판·검사에게 고도의 윤리 의식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정렬 전 창원지법 부장판사가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갈등을 빚던 위층 주민의 자동차를 훼손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지난달 24일 사표를 냈다. 이 전 부장판사는 위층 주민 소유의 차량 손잡이 열쇠 구멍에 접착제를 바르고 타이어에 구멍을 내다 폐쇄회로TV(CCTV)에 찍혔다. 화가 치민다는 이유로 남의 차에 손을 대는 건 판사로서의 기본 자질을 의심케 하는 것이다. 더구나 부장판사라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다면 그에게 재판받은 당사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또 그러한 판사를 걸러내지 못하는 재임용 심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지난 25년간 재임용 탈락이 다섯 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법원의 온정주의적 자세를 그대로 보여준다.

 검찰도 다르지 않다. 여대생 청부 살해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중견기업 회장 부인 윤모씨가 잇따른 형 집행정지로 4년간 병원 특실에서 생활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윤씨를 재수감한 검찰은 그에게 진단서를 발급한 병원 의사를 조사 중이다. 문제는 장기간에 걸친 형 집행정지가 과연 의사 진단서만으로 가능했겠느냐는 것이다. 집행정지 결정을 한 검사들이 진단서의 진위와 윤씨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확인했는지 의문이다. 일각에선 검사와 변호사 간에 커넥션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품고 있는 상황이다.

 판사와 검사의 신분을 보장하고 폭넓은 권한을 주는 건 특권을 누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보다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재판하고 수사하라는 뜻이다. 판·검사 사회는 철저한 자기성찰과 함께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신분과 권한의 망토를 벗기라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판·검사를 포함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법원·검찰 수뇌부의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