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과는 다른 개혁파|체코 당 제1서기 후사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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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체코슬로바키아」공산당의 새로운 실권자로 등장한「구스타프·후사크」(56)제1서기는 소련군 침공의「부역자」라고 일부에서 규탄받아온것과는달리「체코슬로바키아」자유화개혁운동의 창시자인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유화개혁운동이「두브체크」의 업적인것으로 널리인정되고 있으나『사회주의에 인간성을 부여한』「체코」자유화운동의 실제적인 창시자의자리는 마땅히 「후사크」가 차지해야 한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그는 2차대전중인 1941년여름 「나찌」와「파시스트」들의 점령에 항의하여 봉기를 일으킨바있으며 「크렘린」과「코민테른」과는 별도의 독자적인 공산당정책을 추구했다.
그의 목표는「체코슬로바키아」를「모스크바」의 괴뢰로 만들지않는데 있었으며 이러한 그의 목표는「스탈린」시대에도 굴하지않아 오랫동안「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국가와국민에 대한 충성』을 그의「모토」로 하고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두브체크」추종자와는 달리 그는 당조직의 산물이 되지않았으며 정치적개성을 융통성있게 구현해 왔다.「후사크」가 개혁파 지도자이면서도 소련군의 침공이후 점령군과의 협조를 주장한것도 바로 여기에 그이유가 있다.
이러한 주장으로 인해 그는 부당하게 비난을 받았고 「부역자」라는 규탄을 받아야했지만「후사크」가 바랐던것은 다만 그가 할수있는한 『인도적사회주의』정책을 구제하고 자유화계획을 점령군의 치하에 알맞게 개조하여실시하려 한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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