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기획취재] 운동권, 신주류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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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이 사회의 새 주류로?

성급한 질문이 아니다. 이제 범운동권 네트워크를 모르고는 사회 변화를 제대로 읽기 어렵다.

사형을 선고받았던 사람이 정무수석으로 내정되고, 공안당국이 주사파(김일성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세력)로 분류했던 사람이 당선자의 '최측근'이다. 생활 속으로 파고든 시민운동.문화운동.풀뿌리운동. 노사모.촛불시위 등 인터넷으로 결집하는 운동권 세대들.

1970년대 이후 시대별 운동권의 변신과 현주소를 나타내는 흐름이다. 유인태 정무수석 내정자는 민청학련 사건(74년) 때 사형선고를 받은 운동권 1세대다. 반독재 민주화 세력이다.

노무현 당선자의 386세대 최측근인 안희정씨는 80년대 후반의 3세대 운동권 출신이다. 당시 운동권에서도 주사파로 분류했던 고대 애국학생회.반미청년회 사건으로 구속됐었다.

정치권엔 이미 많은 운동권 출신이 진출해 부침을 겪었다. 시국 사건으로 구속됐던 이른바 '빵잽이' 출신 국회의원은 현재 43명이다. 전체 의석의 약 16%다.

구속 전력은 없지만 인권 변호사.사회운동가 출신 등 범운동권을 합치면 70명에 이른다.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한명숙 여성부 장관은 79년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 때 구속됐던 인사들이다.

YS 정권에서는 김정남.손학규 등 운동권 1세대들이 청와대.내각에 기용됐다. DJ 정권에서는 이해찬 등 운동권 1세대들의 중용이 더욱 늘어나고 임종석 등 386 운동권들이 '젊은 피'로 대거 국회에 진출했다.

시민운동.문화운동.풀뿌리운동의 원류는 운동권 1, 2세대들이다. 경실련의 서경석 목사, 참여연대의 박원순 변호사가 '원조'다. 그러나 최근 이들은 반미 감정을 우려하거나 나눔.기부 운동에 헌신하는 등 무게 중심을 옮겼다.

공산주의 몰락과 천안문 사태를 본 90년대 운동권은 '좌절.전향'을 거쳐 출판.영화.벤처.대학.학원.법조.언론.광고기획 등 사회 각 분야로 흩어져 자리잡았다. 이들이야말로 2000년대 나타난 '인터넷 운동권'의 주역이다.

"반독재에서 주사파까지 운동권은 다양하다. 여전히 혁명을 꿈꾸는 사람도, 극우파로 돌아선 인물도 있다. 많은 운동권 출신은 평범한 화이트 칼라다. 이들은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넥타이 부대'로 출현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운동권 주변 인물들을 더 주목한다. 각 분야에서 오랜 기간 자신의 능력을 운동과 결합시키며 대중 동원에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운동권의 주류 진입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엇갈린다.

"주류 교체라고 아직 말할 수 없다. 개혁성은 인정하나 운동권 인사들은 아직 전문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안청시 서울대 교수)

"노무현 정권은 운동권 출신 정권이 아니다. 개혁신당과 내년 총선에서 새로운 틀이 만들어지면 운동권 주력 부대가 비로소 조직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김익한 명지대 교수)

"지난 대선은 한나라당.민주당 간 대결이 아니라 사회 주류의 교체가 본질이었다."(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70, 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이젠 30, 40대를 넘어서고 있다. 범 운동권 출신이 주류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박승옥 민주화기념사업회 기획부장)

<특별취재팀>김창호 선임전문위원.이철호 차장, 백성호.이가영 기자

<news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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