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원짜리 냉장고 구매 결정 '95초'면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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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LG전자의 금속 소재 냉장고 ‘디오스V9100’ 디자인 주역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HA디자인연구소 이대성 선임, 서수민 주임, 서운규 책임, 강진원 팀장. LSR·UX연구소 전휘영 주임, HA디자인연구소 유명동 선임. [사진 LG전자]

‘1분 35초’.

 소비자가 400만원짜리 냉장고를 사기로 결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처음에 냉장고를 보고 3초 만에 순간적인 호불호가 결정되고, 문을 열어보고 손잡이 등 부분을 확인하는 데 7초가 걸린다. 냉장고 내부를 둘러보고, 평소에 사용하던 제품과 비교해 불편했던 부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찾는 데 나머지 시간을 쓴다. 이런 식으로 총 95초면 제품에 대한 인식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한두 사람을 측정한 결과가 아니다. 안구 추적, 동작 측정, 피부 전도 반응 등 다양한 기술을 총동원해 소비자의 반응을 연구한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라이프스타일리서치(LSR) 연구소의 분석 결과다.

 국내 전자업계에선 처음으로 제품이 아닌 생활문화를 연구하는 LSR-UX연구소는 일류 제품을 내놓기 위한 ‘G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다. LSR-UX연구소 최경아 수석 연구원은 “상품기획팀·디자인경영센터와 함께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파악해 어떤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지 제안하는 것이 핵심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냉장고의 경우 매장에 고객이 방문해 제품을 살펴보는 행동을 일정 기간을 정해 CCTV로 분석한다. 제품 어디를 가장 먼저 둘러보고, 어떤 부분을 만져보는지는 모두 기록으로 남긴다. 이를 위해 고객 시선을 추적하는 특수 카메라와 제품 탐색 행동 및 인체공학적 만족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장비도 도입했다. 냉장고를 구매해 사용 중인 고객의 냉장고에 카메라를 달아 일주일간 사용 행태를 분석하기도 한다. LSR-UX연구소 전휘영 주임은 “고객의 지적에 따라 홈바 구조를 변경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이가 (힘이 약하니) 냉장고 문을 잘 못 닫을 것 같다’는 의견을 듣고 소비자마다 손잡이를 잡는 위치가 달라 힘이 분산된다는 걸 알게 됐고, 쉽게 여닫을 수 있도록 홈바 구조를 개선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디자인에도 적용된다. 동작 측정을 통해 어떤 위치의 디자인 개선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것이다. 국가별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에 제품 전략도 다르게 구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미 소비자들은 외관 디자인보다는 제품 정보와 성능 조작 등 내부 디자인을 점검하는 데 반해 국내 소비자들은 외관 디자인과 넓은 내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올 5월 출시한 LG전자의 금속 소재 냉장고 ‘디오스V9100’은 이러한 디자인 분석 결과를 모은 제품이다. 고객들이 매장 내에서 제품을 만져볼 때의 뇌파 반응을 분석한 결과 제품 전면에 차별화된 디자인을 더할 경우 소비자들이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점에 착안했다. 전 주임은 “한 번이라도 제품을 만지게 되면 제품과의 물리적 애착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며 “입체감 있는 디자인일 경우 만져보는 고객이 1.5배가량 많았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HA연구소는 금속 소재 위에 미세한 입자로 패턴을 새기는 ‘비드플래스트’ 공법을 사용했다. HA연구소 서운규 책임연구원은 “북미·유럽에서는 금속 소재를 선호하는 데 비해 국내에서는 ‘업소용’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며 “기존 제품보다 원가가 3배가량 비싼 스테인리스 소재를 선택해 금속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국내외 소비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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