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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금 유죄|서독하원「의장15년」을 떠나기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독의 「게르슈텐마이어」 하원의장이 1월31일자로 그의 15년에 걸친 의장직을 물러났다. 1964년 한국을 방문한 바도 있고 우리나라 국회의장을 초청하기도하여 비교적 한국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게르슈텐마이어」의장이 돌연히 사임하게 되기까지에는 지난해 12월부터 크게 말썽이 된 소위 「게르슈텐마이어」 사건에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가 관련된 사건이란 「나찌」정권에 의해 박해를 받은 사람이 받는 보상금을 타기 위해서 의장의 체면을 손상시켰을 뿐 아니라 의장의 직권을 남용한 듯하다는데서 일부 국민들과 「매스컴」의 비난을 받아온 사건이다.
「게르슈텐마이어」의장은 1935년「로스토크」대학에서 신교학으로 박사학위를 「최우수」란 평점으로 마친 후 교직생활을 결심하고 「베를린」대학으로 가서 계속 연구했다. 그리하여 1938년 동대학에서 대학교장 자격으로 논문을 제출하여 통과되었으나 당시 「나찌」정권은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에서 그에게 교수자격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대학을 또나 그가 반 「나찌」음모에 가담했다는 죄로 구속될 때까지 교회 관계단체에서 일했다.
「나찌」정권에 의해 7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종전으로 풀려 나오게 된 그는 대학에서 교수 초빙이 있었으나 응하지 않고 1944년 그가 서독의회의원이 될 때까지 계속 교회 관계 일을 보았다.
말썽이 된 복권 및 보상 신청은 「게」의장이 1938년 대학교수가 되려는 길이 「나찌」정권에 의해 좌절된데 대해서 그의 전속 변호사를 통해 법원에 신청했던 것이다. 이것을 심사한 법원 보상위는 만일 그의 교직 출발이 「나찌」정권에 의해서 거부되지 않았다면 DRM가 국회의원이 될 때까지는 적어도 부교수까지는 되었을 것이라고 결정하고 그동안의 봉급 (약2천만원) 및 교수란 직위를 소급해서 부여하고 은퇴 후 부교수가 받는 연금(약 2백만원)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이와 같은 보상위의 결정이 전해지자 「매스콤」은 「게」 의원의 보상청구가 마치 사기꾼들이 하는 국가 상대 소송인 것처럼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비난의 초점은 「나찌」보상법 개정 시 그가 의장으로 있음을 이용하여 그에게 유리한 조항을 넣었다는 점, 그리고 1945년 교직 초빙을 거부한 그를 그후도 계속「나찌」박해기간으로 간주하느냐는 점, 보통 사람들은 신청을 해도 몇 년씩 기다려도 몇 푼 타기 힘든 것을 의장이라고 해서 남보다 더 많은 돈을 손쉽게 보상받았다는 점 등 몇 가지 사실을 들고 있다.
말썽이 나자 의회 및 정부에서 이에 대한 조사를 했지만 「게」의장에게는 하등 잘못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기관은 그가 과거부터 금전관계가 깨끗치 못했고 심지어 사이비 반 「나찌」운동가라고 비난을 가해 국회동료의원들에게 신임마저 잃게되어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간 이번 사건으로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 같이 보인다.
의장직만을 사임했을 뿐 아직 의원직은 그대로 갖고 있는데 그의 출신구선 반 「게르슈텐마이어」운동이 벌어질 정도이니 금년 강르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기는 힘들 것 같고 그의 사건으로 그의 소속 정당인 기민당(CDU)도 큰 타격을 받을 것 같다는 것이 이곳 소식통들의 전망이다. <뮌스터=문인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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