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임동원·박지원씨부터 입 열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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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비밀 송금에 얽힌 김대중 정권과 현대의 밀실 야합이 충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임동원(林東源)국정원장(현 청와대 외교안보통일특보)은 "현대가 망하면 대북 길이 끊긴다"며 현대 지원을 경제 장관들에게 강력 주문했다는 것이다.

DJ정권 동안 현대에 대한 엄청난 금융 특혜가 이뤄진 은밀한 배경이 이 한마디에 농축돼 있다. 정부가 모든 편법과 무리수를 동원해 현대에 수십조원을 퍼부어 밀어준 이유를 실감할 만한 증언이다.

박지원(朴智元)비서실장 역시 정상회담 뒷거래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보도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침묵'으로 의혹의 초점에서 빠져 나가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현직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두 사람의 개입 사실을 증언했다는 것은 DJ정권 내부의 미묘한 기류를 반영하고 있다. 朴실장과 林특보가 의혹을 해명하겠다는 金대통령의 결심을 막고 있다는 부분은 더욱 개탄스럽다.

이들 두 사람이 '통치 행위''공개하면 남북관계에 악영향'이란 논리로 국민의 진상규명 요구에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언행이 사실이라면 이는 DJ정권의 비극적 퇴장을 재촉할 뿐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만 보아도 10여 가지의 위법 혐의가 있는데 '통치권'이란 변명의 우산 아래 숨어 있는다고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어제 청와대 국무회의에 金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불참했다. 진실규명의 국민적 요구를 놓고 고민이 깊다는 것이다. 김석수 국무총리도 국회에서 "검찰 수사 유보에 대한 여론이 나쁘다"고 시인한 바 있다.

朴.林씨 두 사람은 DJ정권 5년간 독보적 신임을 받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만일 사명감에서 한 일이라면 왜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비겁하게 숨어지내려 하는가.

스스로가 먼저 밝히는 것은 물론 金대통령에게도 진상고백을 하도록 건의하라. 통치권이란 어설픈 논쟁을 거두고 진실을 알리는 게 국민에 대한 마지막 봉사와 책무다. DJ정권의 핵심인사였다면 그 위치에 걸맞게 명예롭게 마무리를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