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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전당」두 새얼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오는 4월의 「시즌·오픈」을 앞둔 미국의 「프로」야구계는 왕년의 「스타·플레이어」인 「카디널즈」의 「스탄·뮤지얼」, 「브루클린·다저스」의 「로이·캄파넬라」가 「야구의 전당」에 들어가게 되어 화제를 모으고있다. 「야구의 전당」이란 역대의 「스타·플레이어」및 야구 발전의 공로자를 기념하는 야구의 박물관으로서 야구인이면 누구나 입당을 동경하는 최고의 명예.
「야구의 전당」은 미국야구의 원상인 「더펄티」가 「풀레이」를 시작한지 1백년째인 1939년「뉴요크」의「쿠퍼스·타운」에 건립됐다.

<야구기자가 선출>
이 전당은 1930년대에 「뉴요크」교의의 한농부가 「터펄티」가「플레이」한 당시의 신문 기사와「볼」이 든 「트렁크」를 발견하고 그 「볼」을 「쿠퍼스·타운」의 한 사교구락부에서 5「달러」에 사들이기 시작한데서 건립의 기원이 시작됐다는「에피소드」가 있다.
이 사교구락부는 「터펄티」의「볼」 말고도 당시 「스타·플레이어」들의「홈런·볼」등 갖가지 기념물을 수집했는데 이를 탐문한 한 야구기자가 기왕이면 전미의 야구박물관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내세워 오늘의 「야구전당」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후 이 전당에는 기자경력 10년 이상의 야구기자 4백50명이 투표, 3분의2이상의 찬표를 얻어 입문키로 되어있으며 대상은 선수생활에서 은퇴한지 5년이 넘는 왕년의 「스타·플레이어」로 규정했다.

<절차도 까다로와>
올해는 3백4O명의 기자들이 투표를 했는데 올해로써 은퇴한지 꼭 5년째인 「스탠·뮤지얼」은 93.2%인 3백17표, 「캄파넬라」는 2백55표를 얻어 평생의 소원을 푼 것.
한데 이들의 입당에는 선수때의 많은 신기록처럼 여러가지 기록이 따르고 있다.

<두번째 고율찬표>
「스탠·뮤지얼」의 경우 그의 93.2%란 찬표는 66년에 입당한 「보스턴·레드삭스] 의 「테드· 윌리엄즈」 에 이어 두 번째의 고율이고 자격을 얻은 첫해에 당선되기는「테드·월리엄즈」 「재키·로빈슨」(브루클린) 「몸·폘러」(클리블랜드)에 이어4번째.
58년 우리나라에도 원정온바 있는 「카디널즈」의「스탠·뮤지얼」외야수는 그의 「니크·네임」이 「더·맨」(The man)인 것처럼 선수생활 22년동안에 MVP(최고수훈선수)를 3회(43년·46년·48년)나 수상했고 선수생활 13년-자그마치 1백만「달러」의 수입을 을렸고 「내셔널·리그」의 수위타자만 7회 「히트」3,630개 「홈런」475개나 기록한「스타·플레이어」였다. 따라서 그는 1백%의 찬표를 얻을 것이 예상되었는데 결국은 23표가 흩어지는 바람에 최고득표를 놓치고 말았다.

<흑인으론 두 번째>
한편 「캄파넬라」는 「재키·로빈슨」(브루클린)에 뒤이어 흑인으로서 두번째라는 것이 이색적이다.
51년, 53년, 55년에 「브루클린」의 명포수로서 각각 MVP였던 그는 선수생활 10년동안에「홈런」242,평균타율 2할7푼6리를 기록했고, 그의 전성기였던 53년 한해에는 「홈런」41, 타율3할1푼2리를 기록하여 포수로서 어느누구의 추총도 불허했다.
.58년1월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휠·체어」의 신세를 지게된 그는 비극적인 은퇴로 선수생활을 마쳤고 백인부인과의 결혼생활청산등 잇단 비극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야구 의전당」입문이란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감격한 나머지 흑인의 비애도 느끼지 않으며 이세상에서 더바랄것이 없노라고 흐느꼈다.

<더 바랄것 없어>
유명한 「샌디·쿠팩스」투수를 길러낸 것도 「캄파넬라」.
미국의 「프로」야구가 있고 「야구의 전당」이 영원히 남아있는 한 이들의 입문은 화려했던 선수때의 기록과 함께 후세에 길이 남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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