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 「중앙문화」당선작1부|쫓겨난 사람들(4)|김영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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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노인 『(시체들을 보며) 왜 죽었노? 왜? 죄 없이 왜 죽어?(할멈 시체를 안아 일으키며)할멈-.왜 죽었소? 왜? 앙? (이번에는 이노인 시체를 끌어안고) 이노무 영감! 너는 왜 죽었노? 이노무 영감아! 내가 영감이 밉고 참말로 분이가 미웠는지아나? 밭돌이 애비가 하도 보고 싶어서…. 그래서 그래서 부러 미워했다. 영감아! 사위도 못보고 왜 죽었노? 왜? 앙?』이때 분이 바가지를 들고 인민군 모(피묻은 구식의)를 쓴 전호를 데리고 등장. 분이 역시 증오와 저주속에 전신을 내 맡긴듯하다.
최노인 『분아! 분아! 너는 왜 안죽었노? 너는?』
분이 『저는 죽지 않겠어요!』
최노인 『왜? 왜 너는 안죽노?』
분이 『그이가 오시면 말할 게 있어요!』
최노인 『……?……』
전호 『할부지! 산너머 마실사람 다죽었다! 외할매도 죽고 외숙모도 죽고…우리 숨어 다 봤다!』
최노인 『왜? 그 사람들은 왜 죽었어?』
분이 『총에 맞아 죽었어요!』
최노인 『누가 죽있노? 누가?』
분이 『인민군이 죽였어요?』
최노인 『인민군? 인민군이? 에…이…』
우르르 집모퉁이에서 도끼를 찾아들고 나선다. 전호놀라 쥐고 있던 바가지르 fejfdjEmfls다. 좁쌀이 쏟아진다.
석팔 최노인을 가로막으며 구식이를 가리킨다.
최노인 『그렇다! 저놈도 저놈도 인민군이지?(날쌔게 달려가서 구식 시체를 향하여 도끼를 치켜든다)』
분이 『(외쳐)아니에요! 도련님은 아니에요.』
최노인 『(도끼를 치켜든 채)왜? 아니고? 이놈도 인민군인데….』
분이 『도련님은 아버님의 아들이에요! 그리고 이미 죽어갔어요.』
최노인 『내아들? 내 아들이?』
분이 『아버님은 아무도 죽일수 없어요!』
최노인 『왜? 왜 나는 못죽이노?』
분이 『아버님은 두아들을 낳았으니까요.』
(사이)
멀리서 우렁찬 국군의 군가가 들려온다.
최노인 도끼를 내린다.
분이 『(감격적인 어조로)아…! 그이가 그이가 와요!』
최노인 『누가 또 오노?』
분이 『그이 밭돌이 아범이 와요!』
최노인 『그놈은…그놈은 왜 오노? 그놈도 사람을 죽이려 오지?』
분이 『아니에요! 그이는 사람을 죽이지 않을거예요!』
최노인 『거즛말마라! 이노무 구식이도 자식인데 애미를 죽였시니…그놈도 애비를 죽일끼다. (천천히 왼편으로 걸어나간다)』
분이 『아버님! 아버님!』
최노인 『(먼산을 보고 걸음을 멎은채)인제 나는 다시 안 올란다. 자식새끼도 놓지않고…내 생각은 그래도 난리 끝나마 또 잇날같이 저족 뒷산을 갈아 더 많이 옥수수도 심고 감자도 심어갈 한분 살아볼라 캤드니…다 틀려 먹었어….』
분이 『아버님! 아버님!』
석팔 최노인 앞에서 무어라 만류하는 듯……
최노인 귀찮다는 듯이 석팔을 뿌리치고 도끼를 든 채로 옹달샘 뒷길로 퇴장.
석팔 이번에는 분이 앞에서 무어라 열변을 토한다.
분이 『(석팔을 건너다 보다가) 아버님……! (총총 전호를 잡고 최노인을 뒤따라 퇴장)』
석팔 이번에는 혼자 남아서 항변을 토한다. 그러나 벙어리의 독백이라 뜻은 전혀 알수없고…. 석팔의 항변…입에 거품이 일면 -조용한 암전-
무대 처음 초막 장면-.
최노인 먼곳을 보며 서있고 인찬, 최노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꿇어앉아있다. (사이)
인찬 『(고개를 쳐들고) 아버지!】
최노인 『왜?』
인찬 『우리 죄가 아니었어요!』
최노인 『그라마 왜 죽었노 말이다!』
인찬 『…·…··……』
최노인『(고개를 흔들면서) 모른다. 난 아무것도 몰라…인제 알필요가 없어….』
인찬 『(애타게) 아버지! 저 좀 안아주세요! 안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태까지 찾아 다녔단 말예요. 그때 석팔의 말을 듣고….』
최노인 『…벙어리 말을 듣고?…』
왼편에서 전호 등장 씨근거리며.
전호 『할부지! 할부지!』
최노인 『왜야?』
전호 『오매가 멀리 내뺐다!』
인찬 전호를 건너다본다.
최노인 『어데 갔노?』
전호 『몰라! 나한테 집에 가라 카고는 막 달아났다. 저 높은 산너머로 넘어 갔어!』
최노인 말문을 닫고 천천히 초막속으로 들어간다.
전호 『(최노인을 따르며) 할부지! 이 사람이 내 아부지가?』
최노인 『몰라!』
전호 최노인과 함께 초막속에 들어가 버리고 사립문 닫혀버린다. 넋없이 앉아 있던 인찬일어난다.
인찬 『(절규하듯이) 분이! 분이!(무대 왼편으로 비틀거리며 퇴장)』(사이) 텅빈 무대….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와 함께-천천히 막이 내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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