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성이 장남 심사의 신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강릉=현지취재반】9일 밤 평창군 OO면 OO리 이석우씨(32) 집에서 빚어진 공비의 4명 참살 사건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공비들의 만행이 무차별하고 극에 달했음을 보여줬다.
이날 밤 8시30분쯤 아랫마을에서 이삿짐을 날다주고 싸릿문을 들어선 이씨는 집안 퇴비더미 뒤에서 검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 순간 이 그림자는 이씨에 달려들어 칼로 이씨의 엉덩이를 찌르자 이씨는 비명을 지르며 『왜들 이러시오. 소라도 줄테니 좋게 얘기합시다』고 애원했으나 공비들은 『소는 필요 없다』면서 총부리를 들이대고『안방으로 가자』고 했다. 이씨는 안방으로 가는체 하다가 공비들이 한눈파는 틈을 타서 부엌을 거쳐 담을 넘고 짐뒤에 있는 20미터 높이의 계곡을 뒹굴어 졸도했다. 이때 아버지 이씨의 비명과 괴상한 소리에 놀란 장남 학관군(14)이 방문을 열고 나오자 공비들은『이 새끼는 뭐냐?』 하며 대 검으로 여섯번 찌른 후 퇴비더미에 쳐 박았다.
공비들은 이어 안방에 침입, 놀고있던 2남 승복군(9) 을 죽이자 옆방에서 메주를 쑤다가 달려온 이씨의 처 주문하 여인(32) 이장녀 승숙(7) 2녀 승녀양을 껴안고 애들만이라도 살려줄 것을 애걸하자 이들3명까지 질러 죽인 후 닭3마리와 옥수수 가마를 강탈 도망쳤다.
공비들이 사라진 뒤 30분만에 퇴비더미 속에서 의식을 회복한 장남 학관군은 피두성이가 된 채 약50미터 떨어진 최대길씨 집으로 기어가서 『공비가 우리집 가족을 다 죽였다』고 알린 후 기절해 버렸다.
최씨는 이군의 말을 듣고 곧 1킬로쯤 떨어져 있는 경찰·예비군 초소에「릴레이」신고, 군· 경·예비군 수색대가 즉시 현장에 출동. 뒷산에서 2명을 사살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