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화 보자마자 쏜살같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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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양모 여인 (35)은 이날 눈보라가 갑자기 치기 시작한 하오 4시쯤 이른 저녁을 7남매와 먹고 문을 열었다. 마당에 내려서면서 양 여인은 군복 청년 (무장공비)이 마당에 들어오는 것을 발견, 국군인줄 알고 『수고하십니다』고 인사했다. 무장공비는 『방이 없느냐』고 물었다. 『불이 있으니 윗방으로 들어가시오.』 양 여인은 방을 가리키자 안방을 열어보면서 무장공비는 『이방에 들어가겠다』고 고집, 『애들이 있으니 윗방으로 가시오』라고 양 여인은 다시 말했다.
무장공비는 양 여인의 거절에 부업으로 들어가 부뚜막에 걸터앉았다. 이때 양 여인도 따라 들어가 앞에 섰다. 『날씨가 몹시 추운데 수고 많습니다.』 다시 양 여인이 인사. 『주인이 계시나요?』 『금광에 나가시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서 양 여인은 밖으로 나오려 했다. 무장공비는 이때 『연락하러 가는 거냐』고 물었다. 『무슨 연락이요?』 『연락하지 마시오』 이 말을 들은 양 여인은 부쩍 의심이 났다. 『아주머니 연락하지 마시오.』 『연락 안갑니다』 다시 이렇게 대답한 양 여인은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군복에다 농구화, 양 여인은 농구화를 본 순간 무장공비임을 깨달았다. 이 지역을 경비하던 국군은 모두가 「가죽 구두」를 신고 있었던 것.
양 여인이 말없이 부엌을 나서니 무장공비는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할말이 있으니 들어오시오. 아주머니!』 이렇게 3번이나 간곡히 요구했다.
앞개울에서 빨래 갖고 오겠다면서 쏜살같이 반장 집에 달려갔다. 『수상한 사람이 있으니 경찰서에 연락해 주시오!』 양 여인은 이렇게 전달하고 너무나 겁이 나고 떨려 이웃집 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 부엌 거동을 살폈다.
이때 맏딸 ○○여양 (17)이 물을 긷고 부엌으로 들어갔으나 양 여인은 말소리가 나오지 않아 신호하지 못했다. ○○여인이 들어서자 무장공비가 『물 한그릇 주시오』하고 요구, 떠주었더니 반쯤 먹었다. 『추운데 방에 들어가시오.』 ○○여양 『괜찮아 이 어머니는 반장 집에 갔지?』 무장공비가 마져 묻자 『아녜요, 어머닌 빨래터에 계셔요』라고 다시 대답. 이사이 무장공비는 부엌 주변을 끊임없이 살폈고 『부엌문을 닫으라』고 3차례 요구했으나 닫지 않았다.
이 순간 『탕!』 부엌 뒷문에서 총 소리가 터지고 『손들고 나오라』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무장공비는 두손을 들고 부엌을 나섰고 곧 향군에 잡혀갔다. 딸이 봉변을 당했으리라 생각, 오들오들 떨었던 양 여인은 부엌 안에 딸이 태연히 있는 것을 보고서야 딸을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공포 속의 10분, 양 여인은 두려움을 뚫고 신고한 소감을 『당연히 할 일이 아니요. 다만 딸이 살아난 것이 기쁘다』고 말하면서 『무장공비가 꼭 할 말이 있다고 한 그 할말이 지금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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