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 심리 못 버린 북 … 한 급 아래 '얼굴마담' 카드 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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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수석대표의 격(格)을 둘러싼 논란이 당국회담 무산으로 번지면서 양측 대북·대남 전담조직과 구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이 강지영(57) 조국평화통일위 서기국장을 단장으로 파견하려 했지만 기구의 성격이나 직급 모두 석연치 않아 논란이 일면서다.

 남북 간 이견의 가장 큰 요인은 북한이 노동당 지배의 당 국가 체제라는 데 있다. 내각에 우리의 통일부에 해당하는 부서가 없는 대신 당 대남 전문부서인 통일전선부가 이를 총괄하고 있어 딱 들어맞는 상대역을 정하기 쉽지 않다.

 노동당에는 9명의 부문별 비서가 있어 김정은(29) 제1비서를 보좌한다. 김양건(71) 통일전선 담당비서는 당 전문부서인 통일전선부의 부장을 겸한다. 대남 문제를 총괄하기 때문에 정부는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상대로 김양건을 꼽는다.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 조문단으로 서울에 온 김양건이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과 면담하면서 이른바 ‘통-통 라인’을 가동했던 전례도 있다.

 하지만 북측은 김양건 비서를 ‘부총리급’ 이상으로 간주하려는 분위기다. 김정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실세인 데다 업무 관장 범위가 훨씬 넓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정원장 출신 인사는 “북한은 김양건이 통일부 장관뿐 아니라 청와대 안보실장과 국정원장의 대남파트 업무를 총괄하는 것으로 설명한다”고 말했다.

 대신 통전부가 관장하는 조평통에 통일부 상대역을 맡기겠다는 게 북한의 구상이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상무위원·위원·책임참사로 짜인 기본조직 외에 실무는 상설조직인 서기국이 처리한다. 강지영 서기국장을 당국회담 단장으로 선발하고, 실무접촉(9~10일 판문점) 단장에 서기국 부장인 김성혜를 보낸 것도 조평통을 내세우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북한이 조평통의 실체를 ‘사회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게 드러나면서 ‘당국’으로 간주하기 어렵고 서기국장의 급도 떨어진다는 우리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욱이 강지영 서기국장은 사회단체장 중에서도 서열이 후순위다. 2011년 10월 개천절 행사 때는 참석 단체장 중 맨 마지막에 호명됐다. 강지영은 그동안 종교·학생 등 민간 교류를 통한 대남 선전·선동 업무에 종사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3월 조선중앙방송에 나와서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비난하며 “미친 개는 때려잡아야 한다”는 극언도 퍼부었던 강경파다. 회담 경험은 거의 없다. 북한이 통전부 실세인 원동연 제1부부장을 ‘보장성원(지원요원)’에 포함시켜 막후 지휘를 하려 한 것도 강지영이 얼굴마담에 불과하다는 방증이다.

 북한이 대표단 격을 남측보다 하나 낮게 가져가려는 건 냉전 대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를 마치 기선 제압이나 대남 심리전 차원에서 본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정부 때 이런 북측의 의도를 묵인하면서 잘못된 관행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 김대중정부 출범 두 달 뒤인 1998년 4월 열린 베이징 차관급 당국회담엔 당시 정세현 통일부 차관과 전금진 북한 정무원(현 내각) 책임참사가 마주했다. 그런데 9년 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내각 책임참사인 권호웅과 장관급회담을 벌여야 했다. 당시 언론 비판이 잇따르자 통일부 간부들이 나서 “책임참사는 장관급”이라고 주장하며 북한 태도를 감싸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영종 기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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