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헌재 잇단 공개변론 … 최고법원 위상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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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잇따라 공개변론을 열고 있다.

 사회적으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키코(KIKO) 소송과 파견근로자법 위헌소원 사건 등이 공개변론 대상이다. 서로 최종 법 해석 권한을 가진 최고재판소라고 주장하며 힘겨루기를 해 온 두 기관이 민감한 이슈에 대한 공개변론을 통해 국민의 눈길을 선점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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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다음 달 18일 대법정에서 모나미·세신정밀·수산중공업이 각각 제기한 3건의 키코 소송에 대한 공개변론을 연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공개변론은 방송과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을 통한 생중계가 허용된다. 키코는 ‘약정한 범위 내에서 환율이 움직이면 이득을 보지만 범위 밖으로 벗어나면 큰 손실이 나게 설계된 파생금융상품’이다. 상당수 국내 중소기업이 2007년을 전후해 가입했지만 2008년 외환위기로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으면서 큰 손실을 봤다. 현재 200여 곳이 넘는 피해 기업이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쟁점은 키코 계약 자체가 기업 측에 현저하게 불공정한 계약인지, 환율 급등을 이유로 키코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이다. 1·2심 법원들은 판단이 엇갈렸다. 대법원에 현재 계류 중인 키코 소송은 공개변론 대상 3건을 포함해 모두 41건이다. 윤성식 대법원 공보관은 “대표적인 쟁점들을 망라하고 있는 사건을 공개변론 대상으로 선정했다”며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고 쟁점별로 법원의 판단도 엇갈리고 있어 사건 심리 과정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는 13일 ‘파견근로 기간이 2년 이상인 노동자는 원청업체가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옛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6조 3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공개변론을 연다. 현대차는 2년 이상 근무한 파견근로자를 2005년 해고한 뒤 해고 노동자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 현대차는 파견근로자 범주에 불법파견도 포함되는지 등에 대한 규정이 없는 이 조항이 명확성의 원칙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소를 제기했다. 고용계약에 관한 사업주의 자유를 박탈했는지, 사용사업주에게는 고용에 대한 의사를 묻지 않는 부분이 평등원칙을 위반했는지 여부 등이 쟁점이다.

 박준희 헌재 연구관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건이라서 국민이 심리 과정을 알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헌재와 대법원의 잇따른 공개변론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최고재판소로서의 위상 과시 차원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현행법상 법의 최종 해석 권한은 대법원에, 법의 위헌심판 권한은 헌법재판소에 있지만 두 권한의 경계가 분명치 않아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왔다. 긴급조치 위헌심사권 등이 대표적이다. 2010년 대법원이 긴급조치 1호에 대해 “법률이 아니라 규정이므로 대법원이 위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며 위헌 판정을 내리자 헌재는 지난 3월 긴급조치 1호는 물론 2·9호에 대해서도 함께 위헌 결정을 내렸다. 결정문에서 헌재는 “위헌 여부 판단 권한은 헌재에 있다”고 명시했다.

 3개월여 전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지난 3월 헌재가 한정위헌 판단을 내린 옛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에 대해 대법원은 “위헌이 아니라서 효력이 있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법관 출신 한 변호사는 “헌재와 대법원의 잇단 공개변론 개최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심리 과정을 국민이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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