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세의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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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목포시에서는 2일 상오「거지 대장」을 위한 이색시민장을 베풀었다. 목포는 시민장을 한번도 지내보지 못한 곳이다. 이 융숭한 대접을 받은 북망객(북망객)은 금년 56세의 윤학자여사. 「전내천학자」라는 일본성명을 따로갖고 있는 분이다. 그러나 윤여사는 7살때인 49년전 일본에서 현해탄을 건너와 평생을 목포에서 살아왔다.
목포사투리가 하나도 어색지않게 몸에 배어 있는 것만 봐도 그분을 일본인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수수한 차림에, 험한 손은 바로 한국의 토속적인 모성애를 풍겨주는, 그런 분이었다. 평생을 통해 치마·저고리를 입은 시간이 다른 차림새보다는 비교도 되지 않게 많았다. 일본옷은 아예 입어 본적도 없었다.
윤여사가 목포공생원(1928년창립)이라는 고아원에 발을 들여놓은지는 올해로 30년째이다. 그는 일인관리인 부친을 따라 목포에 왔지만, 그만 눌어앉아 버렸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금방 시작한 일이 이 고아원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고아원의 설립자인 윤치호씨가 후에 남편이 되었다. 윤씨는 6. 25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거지대장」이라는 별명은 그후로 남편에게서 물려받은 직함(?)이다. 목포시민들의 귀엔 그쪽이 훨씬 격의없이 들린다.
『평생을 통해 나는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자 본적이 없었다.』
윤여사는 언젠가 남몰래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 한다. 「남몰래」라는 말은 그분이 평생을 수굿하고 골몰해 있었다는 뜻도 된다. 수다스럽지도, 호들갑스럽지도 않으며, 그저 응달쪽에서 자기길을 간 것이다. 1명의 아이를 돌보기에도 지치는 어머니거늘, 3천2백명의 고아를 키워낸 어머니이고 보면….
그 넓은 가슴에 대한민국의 문화훈장 하나, 일본정국의 람수포장하나. 하긴 모든 어머니들에게 더없이 찬란한 훈장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머니의 주름살과… 그 뿐이 아니겠는가.
56년동안 그 6분의 5를 뜬눈으로 열심히 살아온 윤여사는 1백년쯤, 아니 2백년쯤은 산셈이다. 이제 윤여사는 눈은 감아도 귀는 듣고 있을지 모른다.
수만고아들의 웃음소리, 노랫소리에 그는 귀를 모으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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