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회담과 미국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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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6일자「뉴요크·타임즈」지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의「해리먼」대사와「밴스」대사는 최근 월남에서의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갔고, 미군 사상자수도 기록적으로 적어졌다는 통계를 밝혔다고 말하고, 이것은 월맹 측이 지금 미군의 북폭중지를 바라고 있다는 시사로 간주된다고 보도하였다. 이어서 동지는 지난2일「밴스」대사가 급거「워싱턴」으로 향발했는데 이것은 그가「존슨」대통령과 북폭중지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고 보도했다.
한편「파리」로부터의 보도는 월맹대표단이 7일「워싱턴」에서의 사태발전 때문에 예정했던 기자회견을 취소했는데, 이것은 그들이「밴스」씨와 본국정부와의 협의가 현재 교착상태에 빠져있는「파리」협상을 타개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대기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그런가하면 미국의「러스크」국무장관은「파리」회담대표의 단폭권고설을 조심스럽게 부인하고 있지만,「워싱턴·포스트」지마저「밴스」대사가「존슨」대통령에게 교착상태에 빠진「파리」회담의 타개를 위해 미국이 좀더 신축성 있는 태도를 취할 수 있게 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한 것으로 보아,「파리」회담의 진전을 둘러싸고 미국정부안에 모종의 미묘한 움직임이 있는 것만은 부인키 어려운 듯 하다.
투표일을 불과 1개월 앞두고 미국의 대통령선거전이 백열화함에 따라, 월남전쟁처리문제는 양당간의 중요한 정책논쟁「테마」로 재등장했다. 그리고 특히 최근에는 민주당의「험프리」후보가 월남전쟁의「비미국화」·「단폭」·「미군의 조기철수」등 대담한 주장을 내세워 그의 승리가 반드시「존슨」정책의 계승을 의미치 않을 것임을 밝혀 미국내외에 파문을 던졌고, 또 공화당의「닉슨」후보 역시 월남전쟁의 겸험에 비추어 앞으로는 미국이「아시아」의 전쟁에 병력투입의 형식으로 말려들지 않겠다고 다짐함으로써「아시아」제국을 불안케 한바있다.
이처럼 양당의 대통령후보가 공히 월남전쟁과 평화협상에서의 후퇴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는 시기에「파리」에 가있는 미국의 대표가 협상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단폭을 해줄 것을 본국정부에 권고했다고 하면, 미국은 그 국가적 명예와 체면조차 깊이 고려함이 없이 월남전쟁에서 발뺌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인상을 짙게 하기 마련이라 아니할 수 없다.
미국은 대통령선거전을 전후해서 반년간은 국제정세에 어떤 돌발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대외정책에서 현상동결을 해버리는 것이 거의 전통화 하여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미국이 대통령선거전의 본격적 개시에 앞선 불과 몇 달 전에 월맹을 상대로 평화협상을 했다는 것부터가 스스로 궁지에 몰릴 운명을 택한 것이라고도 하겠는데, 그 평화협상자체가 선거「이슈」화 하여 양당 공히 국민의 표를 긁어모으기 위한 인기전술의 수단으로 전락케 함으로써 월남전쟁문제를 정치적으로 혼미한 상태에 빠뜨렸다는 것은 심히 불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단폭권고를 받았다는「존슨」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단을 내릴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물론 추측키 곤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존슨」대통령은 단폭권고를 받아들이는 것이 설사 민주당의 득표에 많은「플러스」를 가져온다고 판단한다 하더라도,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그로서는 결코 대외전쟁을 국내정쟁의 미끼로 삼아 미국과 그 동맹국에 불여의 손실을 가져오는 경솔한 명령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견해로는 적어도 선거전이 끝나 백악관의 새 주인이 결정되기까지는「파리」협상자체를 동결해 두는 것이 어느 편을 위해서나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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