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여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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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희랍신화에 나오는 행운의 여신은 뒤가 벗겨지고, 한 장님이고, 양쪽 발에 날개가 달려있고, 한쪽 발은 차륜 위에 올려놓고 또 한쪽 발은 공중에 띄워 놓고 달리는 여인이다.
행운의 여신은 장님이기 때문에 선악의 구별을 하지 못한다. 절름발이이기 때문에 행운이 찾아들기도 퍽 늦다. 그리고 또 날개가 달려 있기 때문에 행운이 달아나기도 퍽 빠르다. 그런가 하면 또 뒤가 벗겨져 있기 때문에 행운을 잡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이번 국전을 에워싼 여러가지잡음을 들으면 여기에도 꼭 행운의 여신이 장난치고 있는 것만 같다.
국전은 우리 화단의 연중행사, 거기에 잡음이 따라 다니는 것도 연중행사와 같다. 그리고 말썽이 많은 곳에 구경꾼들이 모이기 마련이라면, 이번 국전도 「성황리」에 끝날게 틀림없다고 봐야할게다.
이번에 서예부문에서 대통령상이 나왔고, 기타의 작품심사에서도 표결수가 묘하게도 언제나 똑같았다는 점을 들어 심사위원들 사이에 사전합의가 되어 있었다느니, 돌려가며 상 타기가 되었다느니 하여 꼬집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행운의 여신도 우리 국전에서는 맥을 못쓴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작년도 대통령상 수상작가의 출품작이 금년에는 입선조차 못했다는 것을 보면 역시 행운의 여신이란 찾아오기도 빠르고, 달아나기도 빠른가보다. 혹은 또 정말로 행운의 여신이 장님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 수상작가가 수상을 거부하느니 안 하느니 하여 잠시 화제를 모았던 것도 뭣인가 밝힐 수 없는 뒷 얘기가 있는 것 같기고 하다. 그렇지만 행운의 여신과 맞선 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게다.
다사불여성일사란 말이 있다. 아무리 싸도 공짜보다는 못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떻게 모면 공짜보다는 조금 이라도 받는게 좋을 것이다. 혹은 국전에 너무 큰 기대를 건다는게 잘못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또 아무리 말썽은 많아도 역시 국전자체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게 훨씬 좋을 것이다.
그러나 기왕에 있는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눈먼 행운의 여신이 장난치지 못하게 여신의 발을 꼭꼭 묶어 놓도록 관계자들이나, 출품작가들이나 힘써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전도 국전답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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