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6·15 - 남 비핵화, 의제 고집하면 회담 낙관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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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9일 개성 실무접촉’ 제안에 우리 측이 장소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으로 바꾸자고 제안해 북한의 수용 여부가 대화국면을 여는 마지막 변수가 됐다. 회담 일정상 늦어도 8일 오전엔 답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유엔사령부가 관할하는 판문점에서의 회담을 꺼리는 경향이 있지만 이미 회담 일시와 장소를 우리 측에 일임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통일부는 우리 측의 수정 제의를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남북대화 국면이 열릴 경우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양측 회담 대표단의 면면이다. 이명박정부 시절 줄곧 남북대화가 중단됐었기 때문에 남북회담의 경험이 많은 ‘대표 선수’들은 양쪽 모두 은퇴했거나 자리를 옮긴 사례가 많다. 12일 서울에서 장관급 회담이 열리면 우리 측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회담 수석대표로 나서게 된다. 류 장관 자체가 남북회담 경험만으로 볼 땐 신인이다.

 9일 실무접촉을 하게 되면 우리 측에선 천해성 통일부 통일정책실장(국장급)이 대표로 나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천 실장은 통일부에 현존하는 몇 안 되는 ‘회담꾼’으로 꼽힌다. 2000년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실무를 챙겼 다. 특히 박근혜정부 들어 대북 정책을 직접 챙기는 정책실장을 맡고 있어 실·국장급에선 우선 지목되고 있다.

 북한 대표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2007년 남북 장관급 회담에는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가 나왔지만 5년간 북한도 대남분야 담당자들이 많이 물갈이된 것으로 정부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우리로선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단장으로 나오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지만 북한이 통상 우리보다 한 급 낮춰 대표단을 구성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속단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일각에선 맹경일 전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실장을 예상하기도 한다. 그는 최근 통전부 부부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수석대표로는 급이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북한의 대남통인 이금철은 개성공단을 총괄하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장인 데다 과거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으로 이산상봉 관련 회담에 나온 적도 있어 수석대표는 아니더라도 이번 회담 대표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통일부는 보고 있다.

 실무접촉을 하게 되면 누가 나올지도 불투명하다. 북한이 7일 제안해 온 실무접촉은 말 그대로 서울회담을 위한 회담이다.

 그런 만큼 장관급 회담의 의제와 대표단의 격, 회담 개최를 위한 문제를 협의하게 된다.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은 양측이 무리 없이 의제로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북한이 실무접촉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불허했던 6·15 공동행사 개최를 전제조건으로 내걸거나 우리 측이 비핵화 문제를 의제에 올릴 경우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6·15 공동 기념행사를 7·4 공동성명기념일과 동시에 추진하자고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만큼 우리 측이 전격적으로 수용할 경우 문제가 없겠지만 정부는 이미 북한이 개성에서 6·15행사를 개최하자면서 민간단체를 초청하자 이들의 방북을 불허한 예가 있다. 북한은 또한 핵보유를 헌법에 명기하고 있어 비핵화 문제는 남북 간 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우리 측이 회담 테이블에 이 문제를 올리면 역시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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