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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마이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북의 동북부 진안고원은 이른바 무진장지역. 무엇이 무진장인가 했더니, 무·진·장으로 무주·진안·장수를 한울타리안에 담았다는 뜻이다.
전주에서 진안은 백릿길. 무주항「버스」에 실려 남으로 약30분을 달리면 차는 갑자기 고개를 45도 각도로 추겨들고 숨소리가 가빠진다. 완주군소양면, 험로 곰티재 초입이다. 거듭 꺾어 들어가기만 하는 아혼아홉굽이엔 인가도 행인도 없다.
다만 승세를 다투는 산과 바위만이 차창에 부닥칠둣 달려와선 뒷걸음질치고 이따금씩 놀란 꿩이며 산새들이 푸드득 깃을쳐 풀섶에서 날아가곤 한다. 한여름에도 염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는 해발761미터의 정상에서 내리막길을 굽어본다. 주마간산아닌 주차관산으로 어느덧 해는 한나절.
바로 이곳이 진안땅을 여는 군계이자 설원의 관문. 약8킬로미터를 더 달렸을 즈음 한 승객이 무의식중에 터뜨리는 환성에 눈을 돌린다. 남녘을 가로막은 산줄기 저편에 마이산이 그 특이한 자태를 마치 무지와 인지로 그린 V자모양으로 상반신을 드러냈다.

<「만년대풍」의 피서지>
고원은 펀펀한 평지라지만, 해발350∼400미터의 높이에 위치하여 위도상으로는 남측이면서도 기온차가 심해 피서지로는 천연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봄이 소걸음으로 연착을 하는가 하면 가을은 특급으로 달려와 서서히 남하하고 한쪽으론 북상한다.
올같은 가뭄 소동도 이곳 사람들에겐 마이동풍격으로 실감이 안나는 모양. 그럴것이 고원의 상공은 초여름에 발생하는 저기압의 통로로 진안골엔 년평균 약1천밀리의 빗물이 쏟아진다. 그것은 금년에도 어김없이 대풍을 가져왔다.
진안면에서 마이산은 남쪽으로 3킬로미터의 거리. 손에 잡힐둣 선명한 쌍봉은 하늘을 갈러 주위의 산세를 압도한다. 정종(이조제2대왕)이 행찻길에 산모양이 꼭 말귀룰 닮았다고 한데서「마이」라 유래했다던가. 신라때는 서다산, 속금산은 이태조가 내린 이름이라고 전한다.
속칭 부부봉으로 불리는 둘 증의 하나 웅봉의 높이는 667미터, 자봉이 663미터. 키는 비슷하지만 웅봉은 과연 남성적인 기강에 직선적인 준엄한 자세로 버티고 서서 등산객들의 섣부튼 등반을 허용치 않는다. 그런가하면 다양한 곡선을 지닌 자봉은 은근하고 원만한 부덕을 속깊이 감싸고 있는 양 대조를 이루었다.

<볼때마다 맛다른 명산>
평탄한 지형을 이룬 화강편마암지에서 불쑥 돌출한 바위가 침식작용에 의해 봉우리를 이룬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마치 「콘크리트」로 쌓아올린둣 크고 작은 돌들이 모래 반죽이 되어 원형을 간직한 채로 굳어있다.
이 고장 사람들 말대로 『명산은 명산인디 말이여…』 아직 관광지로서 각광을 못받고 있는것은 길이 험하고 관광객을 유치할만한 시설이 미비하기 때문.
우선 난관인 곰티재는 가장 험한 고비만이라도 피하기위 해 「터널」공사가 진척되곤 있다지만 고원 곳곳에 산재한 운일암·반일암등 유망한 관광지의 개발은 아직 요원한둣. 안내 (임명환씨)를 따라 이윽고 남녀쌍봉이 연접한 마루턱에 올라 숨을 돌리고 웅봉허리춤 천황문(화암굴)에서 샘솟는 약수로 열을 식힌다. 체내에 싸늘한 선을 굿고 내려가는 그 상쾌감.

<백20기의 석탑 눈끌고>
자봉을 안고 한참동안 돌아내려가면 계곡은 벙굿이 좌우로 벌어진다. 폭1백여미터, 높이 약50미터의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나고 그 밑으로 산사가 바싹 붙어있다. 골짝 위쪽에서부터 특이한 모양으로 쌓인 석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곳은 이태조가 등극전에 백일기도를 올리고 산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오는 명당. 위화도회군 「쿠데타」로 왕업을 성춰하리라는 계시라도 받았을까? 그야 알수 없지만, 아뭏든 왕위에 오른 태조는 두봉우리를 온통 비단으로 감싸 보은을 할 요량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나라의 군주로서도 그것은 불가능했던 듯. 결국 산이름울 속금산이라 고쳐 말로만 잔뜩 호사룰 시킨 셈인가.
북으로 금강, 남으로 섬진강의 원류를 이루는 분수령도 바로 이곳. 바위사이를 쏟혀내리는맑은 물소리는 사철 끊이지 않는다. 산사와 탑은 약80년전 이갑룡씨의 손으로 이룩된 것. 현재는 그 장손 이왕훈씨가 뒤를 이어 관리하고있다.
이 지방에서 이처사로통하는 이갑룡씨는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 공든탑을 쌓기에 10년을 하루같이 보내고, 줄곧 이 산의 주인(산신)을 모시면서 수도에 전념하다가 10년전 98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떴다고 한다.
가장 큰 천지탑(약13미터)에서부터 밑으로 내려오면서 작은 것은 1미터 남짓한것까지 대소1백20기. 거의 자연석을 그대로 쓴것이 특색이다.

<사시절 따라 이름도 갈려>
앞서 산이름의 유래를 들멱였지만 그것은 또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봄날 유난히 짙은 고원의 안개는 망망대해를 연상케하는 것. 만상이 그속에 묻힐때도 뚜렷이 떠오르는 쌍봉은 돛폭같대서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굽이쳐 뻗어나간 푸른 산맥이 용의 몸뚱이라면 쌍봉은그 뿔같다는 비유다.
마이산이 제이름을 찾은것은 가을철. 산이 살찐 말처럼 붉고 누른빛으로 익어갈 때 봉우리는 그대로 두개의 「마이」다. 겨울이면 휜눈속에 뾰족히 붓끝처럼솟는 웅봉에 자봉은 흰종이에 먹글씨처럼 꺼뭇꺼뭇 얼룩져 문필봉이고.
비 갠 한낮 햇볕도 쨍쨍한데 산사함석지붕엔 후둑이는 빗소리가 쉴새없다. 소나기일 리도 없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다. 여기저기 패인 바위구멍에선 연방 비둘기들이 들고 나면서 짙고 높은 초가을 하늘에 날개를 파닥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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