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 병법 + 거스너 혁신 … 동서양 융합이 화웨이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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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삼성전자의 미래 최대 경쟁자는 애플도, 구글도 아닌 중국 화웨이(華爲)가 될 것이다’. 요즘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에 자주 등장하는 화두다. 그만큼 화웨이의 성장세가 무섭다는 얘기다. 1988년 선전의 모래밭에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해 에릭슨을 제치고 세계 최대 통신장비 기업으로 떠올랐다. 2년여 전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 진출하더니 이제는 삼성과 애플을 맹추격 중이다. 140여 개 나라 시장에 거점을 둔 다국적 기업이기도 하다. 무엇이 오늘의 화웨이를 만든 것일까.

 세계 휴대전화 업계는 오는 18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화웨이가 런던에서 차세대 스마트폰 ‘어센드 P6’을 발표하는 날이다. 삼성의 ‘갤럭시S4’를 겨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두께가 관심이다. 인터넷에서는 이미 6.3㎜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갤럭시S4’의 7.9㎜보다 훨씬 얇다. 지난해 1월 가전·IT전시회인 ‘CES 2012’에서 6.68㎜의 스마트폰을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화웨이가 또다시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화웨이는 고유 영역인 통신장비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분야에서도 기술을 선도하는 업체로 등장했다.

마오쩌둥처럼 자력갱생, 주변 → 중심 공략

 화웨이 경쟁력을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설립자이자 최고 의사결정자인 런정페이(任正非·69) 회장이다. 군 출신인 그는 “존경하는 인물이 두 명 있다”고 말한다. 바로 혁명가 마오쩌둥(毛澤東)과 IBM의 전 CEO인 루이스 거스너다. 이들에게서 경영 기법을 배웠다고 한다. 마오쩌둥과 거스너, 이들은 화웨이의 성장 비밀을 풀어줄 키워드이기도 하다.

 런 회장은 “마오쩌둥에게서 ‘자력갱생(自力更生)’을 배웠다”고 말한다. 이는 회사 경영 이념을 담은 ‘화웨이 기본법’에 담겨 있다.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는 조항이 그것. ‘R&D투자로 기술 자립을 이루겠다’는 선언이다. 지난해에는 전체 매출의 약 13.7%에 달하는 300억 위안(약 5조2200억원)을 투입했다. 전체 직원 1만1000명의 약 45%가 R&D인력이다. 설립부터 지켜온 원칙이다. 최근 화웨이 분석자료 보고서를 낸 나대니얼 아렌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1980년대 말 대부분의 중국 기업이 외국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기술을 얻었던 데 비해 화웨이는 독자 개발을 고집했다”며 “90년 첫 전화교환기(스위치)를 개발한 뒤 품목을 늘려 왔다”고 설명했다. 당시 500명의 직원 중 300명이 R&D인력이었다.

군장비 공급권 등 국가 특혜도 큰 힘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한다(農村包圍城市)’는 마오쩌둥의 ‘병법’도 화웨이의 시장공략에 그대로 적용됐다. 상하이벨·에릭슨 등 외국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대도시 시장을 피해 중소 도시를 먼저 공략했다. 해외 시장 진출도 마찬가지였다. 아렌스 연구원은 “96년 국제화에 나선 화웨이는 러시아·태국·브라질·남아공 등의 순서로 시장을 넓혀 갔다”며 “선진국 시장은 네덜란드와 독일에 지사를 설립했던 2001년에야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주변에서 힘을 기른 뒤 핵심을 파고드는 전략이다.

 화웨이의 성장 뒤에는 국가의 무한 지원이 있었다. 화웨이는 93년 자사 라우터(네트워크 장비)의 인민해방군 공급권을 따냈고, 이를 계기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해외 진출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총알(자금)’도 보급받았다. 2004년에는 국가개발은행으로부터 100억 달러, 수출입은행으로부터 6억 달러를 지원받았다. 국가개발은행이 화웨이 제품 수입용으로 나이지리아에 200억 달러를 대출해주는 방식이다. ‘그 덕택에 화웨이는 경쟁사보다 가격을 최고 70% 이상 깎을 수 있었다’고 뉴스위크(2006년 1월 6일자)는 보도했다.

외국 컨설팅업체 손잡고 서방시장 뚫어

 미국이 화웨이를 경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간판만 사영기업일 뿐 속으로는 국가의 정책에 따라 움직이는 ‘통신 스파이 기업’이라는 시각이다. 2008년 미국 의회가 화웨이의 미국 3com사 인수를 저지한 이유다. 최근에는 화웨이 부품 구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하기도 했다.

 화웨이가 이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쟁쟁한 경쟁사를 물리치고 서방 시장을 뚫을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은 ‘거스너’로 상징되는 외국 컨설팅업체와의 협력에 있다. 중국 산업을 연구하고 있는 박상수 충북대 교수는 “기술은 자력갱생 노선을 걸었지만, 경영·관리 분야는 IBM 등 최고 외국 컨설팅 업체에서 배웠다”며 “인력관리 분야에서는 헤이(Hey)그룹과, 자금관리는 IBM·KPMG, 고객관리는 PWC 등과 컨설팅 협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베이징 사무실에는 70여 명의 IBM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마오쩌둥과 거스너’라는 중체서용(中體西用)식 경영이 화웨이를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셈이다.

 이는 화웨이가 사영기업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주주인 정부의 간섭을 받는 다른 국유기업과는 달리 화웨이는 관치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지원은 해주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 국가-기업 관계다. 이는 중국 기업의 새로운 국제화 모델이기도 하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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