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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역사가 공통점, 공과 함께 보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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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보형 교수의 오피스텔 방은 온통 책으로 가득했다. 24년 전 퇴임 후 이곳에서 매일 책을 읽으며 즐겁게 지낸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발분망식 락이망우 부지노지장지운이(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배움을 좋아하여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면 밥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 걱정을 잊으며, 늙음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조차 잊는다).’-공자

 ‘인생에 가치있는 일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완벽하게 진실이고, 아름답고, 좋은 것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레인홀드 니버

 벽에 붙어있는 낡은 종이에 적힌 글이다. 사방이 책으로 가득 찬 방.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 14층에 있는 이 방의 주인은 아흔 살 이보형 서강대 명예교수다. 그는 최근 1950년대부터 지난해까지 발표한 논문과 수필·소설 등을 모아 『우암사론』과 『우암여화』를 출간했다. 우암(又庵)은 이 교수의 호다.

 “신통치도 않은 글들이에요. 90세를 맞아 주변에서 하도 권하길래 지금까지 쓴 글을 모아봤을 뿐이죠.”

 1924년 서울에서 출생한 그는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다 일본 군대에 끌려갔다. 해방 후 만주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 구사일생으로 귀국했다. 그리곤 서울대에 편입해 동양사와 미국사를 공부했다. 48년 출간된 국내 최초 미국사 개론서 『미국사 개설』의 저자가 바로 이 교수다. 52년에는 역사학회 창립에 참여했고, 76~77년 서양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홍익대·중앙대·동국대·서강대에서 교수로 일하다 89년 정년퇴직했다. 퇴직 후엔 미국사학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정년퇴직하면서 이곳에 사무실을 마련했어요. 24년간 강의에 얽매이지 않고 읽고 싶은 책 읽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지내고 있어요. 정말 좋습니다.”

 국내 미국사 연구의 초석을 닦은 역사학계의 원로, 이 교수는 겸손했다. “역사가라기보다는 역사 읽는 사람 ‘독사가(讀史家)’ 정도로 불러달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역사가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고 했다.

 “역사를 공부할수록 객관적인 역사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훌륭한 역사가들은 역사를 최대한 공정하게 보려고 노력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어떤 일이든 공과가 있는 법이죠. 한쪽으로만 몰아가는 건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그는 열혈 야구팬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82년 프로야구 출범 땐 삼성 라이온즈 고문으로 일했다. 90년대 초반엔 야구전문지 ‘주간야구’에 스포츠 해설가 허구연씨와 번갈아 칼럼을 연재했다. 『우암여화』의 절반 이상이 야구 얘기다. 동국대 교수 시절 갓 창단된 야구부 부장으로 느낀 고충(63년), 고교야구 인기 분석(73년), 프로야구 탄생에 대한 기대(81년), 백인천 감독 퇴임에 대한 아쉬움(91년) 등 60~90년대 야구 역사를 아우른다. 야구 사랑은 여전하다. “가끔 야구장에 가요. 실제로 야구하는 걸 보면 TV에서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달라요.”

 아흔을 맞은 감회를 묻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흔이라 해서 특별한 느낌은 없다”고 했다. 병원에 갈 때 나이가 들었다고 느낀단다. “의사에게 어디가 안 좋다고 하면 으레 ‘연세가 있으시니 당연하지요’라고 해요. 그때서야 내 나이를 생각하게 되죠. 사실 어떤 면에선 제가 젊은이들보다 젊을 겁니다.”

 그의 생활 신조는 ‘매일 매일 새롭게’다. 늘 뭔가 새롭고 재밌는 일을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려고 한다. 좌절하고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 퇴직을 앞뒀거나 퇴직 후 방황하는 중장년들에게 조언을 청하니 “어떤 일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했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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