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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 기념사업회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조말엽 대한매일신보 발행인으로 항일독립운동에 선구적 역할을 다하였던 영국인 「어니스트·T·베델」(한국명=배설)씨에 관한 논의가 최근한창이다. 논의는 고인의 유가족이 실로 60년만에 「런던」에서 발견됨으로써 갑자기 대두하기 시작하였거니와 그후 70여년전의 대한매일신보사옥이자 주택이었던 「베델」씨의 옛집·일기·유품등이 발견됨에 이르러 이국인이면서도 우리의 항일독립을 앞장서 지켰던 배설씨를 기념하는 사업을 일으키자는 논의가 점차 무르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인에게 주어진 「건국공로훈장」도 마침내 그 주인을 찾게된것이다.
「베델」, 그는 젊은 나이 37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정의의 필봉으로 일관해 살았던 열혈의 사나이였다. 1905년, 대한매일신보를 발간하면서부터 일제침략을 규탄하고 그 독아의 정체를 폭로하기를 일삼았다. 그가 기울어져가는 한국의 국운을 돌이키기 위해 싸운 발자취는 너무도 찬연하다. 따라서 그가 받은 박해도 결코 적지가 않았다. 이등박문의 발악은 고사하고 목전의 실리만을 쫓기에 급급했던 영정부로부터도 모진박해를 받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개인생활은 당시의 한국국운만큼 비극적이었다. 그는 옥살이를 하였지만 그러나 그는 끝내 굴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그는 모든 한국인의 가슴속에 감사의 염과 함께 살아남게 된것이다.
따라서 그를 기념한다는 것은 동시에 우리의 지난 국난을 기록해놓고 또 하나의 호국의 정신적 지주를 세워놓는거나 다름없다 할 것이다. 이제 그를 추념하고 기념하자는 논의가 일게된 것을 아무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언론의 요람이었고 초기항일 독립의 정신적 기지였던 서울시내 홍파동 소재 그의 집은 현재 안동원씨의 개인소유로 되고 있다한다. 그래서 안씨는 사재를 털어서라도 그 집을「배설기념관」으로 만들어 유품들을 모으고 원형대로 보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한다. 그 뜻은 참으로 고마운 것이 아닐수없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로는 배설기념관의건립, 운영등은 어느 개인의 독지로써만 이루어질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기에는 그가 남긴 업적, 우리가 기록해 두어야할 당시의 상황이 너무도 값지고 교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비록 이국인이었다 하더라도 그의 정신에서 민족적저항, 독립을 위한 정신의 자세를 오늘날에도 배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래서 그 기념사업에는 모든 언론인이 폭넓게 참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미 편협에서는 유공언론인 사업을 연차적으로 전개 중에 있거니와 그를 기념하는 사업은 편협뿐이 아니라 신문협회를 비롯한 모든 언론단체가 일체가 되어 전개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재언할 필요도 없이 그의 항일이 곧 우리의 항일이었고 그가 지키고자 했던 독립이 바로 우리의 독립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보여준 불요불굴의 기자정신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자유언론의 등불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유서깊은 그의 구가가 발전된 오늘, 우리는 이를 모체로 한국언론의 무궁한 발전을 상징하고 국내의 모든 언론인및 언론단체가 자주적인 단결과 화목을 촉진시킬수 있도록 우리는 이에 배설기념사업회관의 건립을 제의코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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