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만 기뻐하자 했는데 이틀 기쁘더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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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호 06면

다시 홍경택(45)이다. 5월 25일 있었던 홍콩 크리스티 ‘아시아 현대미술경매’에서 그의 작품 ‘Pens 1(윗사진)’이 663만 홍콩달러(약 9억6800만원)에 낙찰됐다. 2007년 5월 같은 경매에서 추정가의 10배가 넘는 648만 홍콩달러(7억7760만원)에 판매된 작품이 다시 리세일되면서 한국 작가 최고가 기록을 스스로 경신한 것이다. 프리뷰를 참관한 사람들은 홍콩 크리스티 측이 작품을 메인 장소에 설치하는 등 “확실히 예우해주는 분위기였다”고 전한0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서 한국인 최고가 기록한 홍경택

그는 중앙SUNDAY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담담하다. 작품이 좋은 가격에 낙찰된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지만 하룻밤의 이벤트일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다진다. 딱 하루만 기뻐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솔직히 한 이틀 기뻤다”고 털어놓았다.

홍경택은 이런 사람이다. 떠들썩한 세간의 흥분과 상관없이 여전히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작가다. 2007년 홍콩 세일로 뜨기 직전에 그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내가 아는 바로는 그는 늘 똑같았다. ‘스타 작가’라는 호칭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진지하고, 한결같이 성실하다.

사실 기뻐할 만한 일이다. 불황기에 10억원 가까이 되는 금액으로 작품이 팔렸다는 것은 그의 입지가 매우 안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한국 미술품 가격의 한계가 높아졌으니, 분명히 홍경택 개인뿐 아니라 한국 미술계 전부가 기뻐할 일이다. 그동안 한국 작가의 작품들은 지나치게 저평가되고 있었다.

물론 상업적 성공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상업적인 측면이 지나치게 부각돼 그의 진가가 가려질 지경이다. 갤러리·옥션 같은 상업적 기관뿐만 아니라 미술관 같은 비상업적 기관도 그를 한국 현대 미술계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이번에 화제가 된 ‘연필’ 시리즈뿐 아니라 ‘훵케스트라’와 ‘서재’ 등의 시리즈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만난 한 미술관계자가 ‘당신의 그림은 색이 환상적이다. 그것이 세계화의 포인트’라고 하더라. 나도 동의한다. 내가 사용하는 색은 도시를 광휘에 휩싸이게 하는 환상적인 색, 21세기적 삶의 색이다.”

홍경택은 칸딘스키처럼 음에서 색을 느끼는 능력, 색청(色聽) 능력을 가진 세계 미술사에서 보기 드문 사람이다. 백남준이 TV 조정화면의 컬러샘플을 전자색동으로 해석했던 것처럼 홍경택은 광고와 조명, 대중음악 등 우리의 삶에 만연한 색감을 작품에 끌어들였다.

“내 그림은 일상적인 것에서 절정을 끌어내는 것이다. 특히 연필 그림에는 영혼과 물질, 비구상과 구상, 추상 표현주의와 팝아트, 숭고와 에로티시즘, 여성과 남성, 분열과 통합이라는 매우 복합적인 요인들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이 복합적 요인들이 동시적 절정에 이른 순간을 표현했다. 앞으로도 러너스 하이 같은 유쾌한 호르몬을 분비시키는, 생생한 에너지를 풀어내는, 중독성 있는 느낌을 주는 작업을 하고 싶다.”

홍경택에게는 겉멋든 글로벌리즘의 흔적 따위가 없다. 오히려 그래서 그는 개성 있고, 더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작가가 됐다. 세계적인 것이 한국 한복판에서 자라날 수 있다는 문화적 자신감이다. 마치 싸이가 ‘강남스타일’에서 그랬던 것처럼 세계 음악계를 겨냥해서 무엇을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스타일에 충실했던 것이다. 홍경택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 됨으로써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처음 발표되었던 1990년대 초 그의 작품은 낯설었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미의 기준을 새롭게 바꾸어 나간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낯설다. 그러나 새로운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뿐 결국 예술가의 비전에 모두 동의하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홍경택의 세련된 미감을 대중이 따라가는 데 거의 20년이 걸린 셈이다.

글로벌 아트 마켓에서 홍경택의 성공은 경기 불황과 미술품 불법거래로 위축된 한국 미술계에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외국 작가의 작품 구입에는 거금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막상 한국 작가들에게 인색했던 풍조를 진지하게 반성해 볼 때다. 한국 작가들에게 한국 컬렉터가 인색하다면 한국 미술이 어떻게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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