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동 캠프장…국적초월 교류의 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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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텔레비전으로 축구를 보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신나게 맥주파티를 벌였습니다"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강공원 난지지구내 월드컵 캠프장에서 만난 폴란드인 보이텍(22)씨는 쓰린 속을 달래느라 연방 냉커피를 마시면서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전날 캠프장 본부에서 '노 페이(no pay)'를 선언하고 불고기와 맥주 등을 준비해준 덕분에 오후 8시부터 잔디밭에서 70여명의 내.외국인이 한데 어울려 '한여름밤의 파티'를 벌였다는 것이다.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출발해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치는 긴 기차여행 끝에 배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왔다는 그는 "전세계 여러 도시를 가봤지만 서울처럼 환상적인 곳은 없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돈문제..잊어버리자구요. 이렇게 즐기다가 돈이 떨어지면 호텔이나 바에서 일하면 되니까요"라며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는 월드컵이 끝난 후에는 태국여행을 한 뒤 호주로 가서 호텔 바텐더로 취직하겠다고 말했다.

웃옷을 벗어던진 채 햇볕을 즐기던 그는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스스럼 없이 손을 흔들었다.

월드컵 개막일을 앞두고 지난달 18일 개장한 이곳에는 현재 프랑스, 폴란드, 독일, 영국, 중국, 브라질, 미국, 슬로베니아, 핀란드, 캐나다, 스코틀랜드 등 11개국 58명의 외국인을 포함, 100여명의 '캠핑족'들이 머물고 있다.

월드컵을 맞아 이곳 캠프장을 찾은 이들은 한낮에는 더없이 좋은 한국의 태양을 한껏 쬐거나 쇼핑.관광을 즐기고, 밤에는 캠프장본부에서 마련한 27인치 TV를 보며 월드컵 응원전을 함께 펼치며 서울의 야경을 만끽하고 있다.

'꿈의 구연(球宴)' 월드컵이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연대의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 캠프장은 하루종일 온수가 나오는 샤워장과 깨끗한 화장실, 그리고 취사대가 곳곳에 마련돼 있어 캠핑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텐트와 매트, 담요까지 모두 대여해 준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 주말캠핑을 왔다는 김광현(36.회사원)씨는 "밤이면 분수대에서 펼치는 레이저쇼를 보면서 아이들이 즐거워해 추억만들기에 맞춤한 장소"라고 말했다.

잔디밭위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연인과 함께 점심을 즐기던 캐나다인 엘리스(27)씨는 건너편에 보이는 보이텍씨를 두고 "정신없는 친구(crazy guy)"라며 악의없는 흉을 본다.

그는 "여기와서 즐기다 보면 처음 만난 사인데도 금방 친해진다"며 웃었다. 한국에서 학원강사로 일하는 미국인 말레나(23.여)씨는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여기서 캠핑을 즐긴다"며 "다음 주말에도 여기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응원하러 왔다는 발레리 슈니트(30.여)씨는 "낮에는 이태원으로 가서 구경하고 밤에는 여기와서 TV로 축구를 보며 즐긴다"고 서투른 영어로 설명했다.

그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해 함께 온 프랑스 사람들 외에는 새친구를 사귀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지만 정작 내국인들에게는 홍보가 부족해 '외국인만의 캠프장'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산에서 이곳을 찾은 정성진(33.회사원)씨는 "출퇴근길에 이곳을 지나면서도 외국인 전용시설인줄 알았다가 뒤늦게 우리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다"며 "인터넷에도 충분한 설명이 없어 어떨까 싶었다"고 말했다.

지역신문을 통해 이곳을 알게됐다는 신은주(27.여)씨는 "도보로 15분이라는 설명도 사실과 다르고 택시기사분들도 이곳을 몰라 찾아오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함께 온 홍지수(26.여)씨는 "캠프장 안에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이벤트가 부족한데다 멀티비전 설치도 못하게 하는 FIFA의 상혼이 얄밉기까지 하다"고 꼬집었다.

캠프장안에 매점이 없고 가족용 캠프장과 밤새 왁자지껄 놀기 원하는 젊은이들의 캠프장을 따로 두지 않은 것도 흠이다.

이에 대해 캠프장 본부측은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내외국인이 함께 어울리는 캠프장이 되도록 하겠다"며 "지적한 부분을 보완해나가면서 불편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예약은 한국캠핑문화연구소 홈페이지(www.camping.or.kr)나 전화 (02) 372-1141을 통해 가능하며 직접 방문하면 즉시 텐트를 배정받을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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