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마피아' 불량부품 유착 국민은 올여름 더 더울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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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 주변엔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원전 1기를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과 부품은 약 3조원에 300만 개. 원전이 국내 전력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0%나 된다. 때문에 전력시장에서 원전산업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진입장벽은 높다. 하지만 일단 장벽을 넘기만 하면 안정적이다. 다른 업체가 진입하기 쉽지 않아서다. 원전 분야 관련자끼리 결속력이 매우 강한 이유다. ‘원전마피아’라고 불릴 정도다.

 ‘그들만의 리그’이다 보니 비리가 속속 나온다. 지난해 2월엔 고리원전 1호기가 12분간 완전 정전됐지만 이곳 간부는 이를 숨겼다. 원전은 가동이 정지되면 핵연료를 식혀 주지 못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사실은 한 달 만에 폭로됐고, 그 후에도 가짜 품질보증서로 짝퉁 부품을 납품받는 등 각종 비리가 터졌다. 지난해 7월에는 한국수력원자력 임직원 22명이 납품 비리로 무더기 구속되기까지 했다.

 올 초부터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개선에 나섰지만 공생·유착 관계가 쉽게 끊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전 부품업체 관계자는 “원전업계에 뇌물의 먹이사슬이 형성돼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걸 내 입으로 어떻게 얘기하느냐. 잘 알지 않느냐”고 답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그들끼리 밀어 주고 끌어 주는 한 고리를 차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28일 원자력안전위원회 발표로 문제가 된 케이블 납품업체도 국내 7개 시험기관 중 한 곳에 제품 시험을 의뢰했고 이곳에서 캐나다 시험기관의 시험 결과를 조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의뢰한 업체가 시험 내용을 바꿔달라고 했다면 원전업계 풍토상 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아야 하는 시험기관이 거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원자력 전문가는 지난해와 올해 불거진 문제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서균열(원자핵공학) 서울대 교수는 “이런 문제가 발생해도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납품을 하는 업체 입장에선 납기를 맞추지 않으면 일감이 사라지니 위·변조의 유혹이 따를 수밖에 없다”며 “한국도 미국과 일본처럼 전력예비율을 30~40%대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전했다. 현재처럼 전력예비율 5~10% 수준에 허덕이다간 산업 전체가 공멸의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사태로 올여름엔 극심한 ‘전력 가뭄’이 불가피해졌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기(신고리 2호기, 신월성 1호기)가 가동 중단됨에 따라 애초 올여름 100만㎾가량 여유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오히려 200만㎾ 부족으로 바뀌었다. 이는 부산시가 1년 동안 쓰는 전력의 80%에 달하는 양이다. 한여름엔 ‘제한 송전’까지 우려된다.

산업부는 재발방지 대책으로 국내 모든 원전의 특별점검을 발표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한 해결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균섭 한수원 사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시간을 좀 더 주면 (공생·유착 관계)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원전은 우리 국민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정말 중요한 문제임에도 여러 사고들이 발생해 왔다”며 “확실히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까지 나선, 원자로만큼 두꺼운 벽 뒤에 숨어 있는 ‘그들만의 리그’ 척결이 이번엔 제대로 먹힐지 주목된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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