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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메이크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9일 결혼식이 막끝 난 명동의 Y예식장. 「미니」차림의 날씬한 아가씨 3명이 신부측 접수를 맡고 있는 P씨를 찾았다. 『신부와 한 회사에 있는데요. 못나온 친구들에게 갖다줄 답례품 25개 만 줘요』아가씨들은 이 말을 남기고 창피하다는 듯이 낄낄거리며 정문 앞 다방으로 달아났다.
P씨는 신부측 친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선심을 썼다. 5개를 더 보태어 30개를 다방까지 갖다주고 「코피」까지 대접했다. 이 멋쟁이 아가씨들이 요즘 Y예식장을 무대로 활약하는 「케이크」부대 「3총사」다. 얼마 전 종로 D예식장 사무실에 만삭이 된 듯 배가 잘룩한 40대 여인이 경비원 유치종씨에게 끌려왔다. 유씨는 이 여인의 치마 밑 자루 속에서 답례품인 「하이타이」 19개를 빼냈다. 「캥거루」파 「케이크」꾼으로 불리는 이 여인은 18개의 「하이타이」를 해산(?)하고 홀가분한 몸으로 경찰에 인계됐다.
지난 토요일 J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김모 신랑의 가족들은 케이크 부대를 막으려고 답례품을 부조금과 접수처에서 맞바꿨다. 식이 끝난 뒤 부조봉투를 털자 1백20여장 가운데 30여장인 빈 봉투였다. 이것은 빈 봉투를 내밀고 답례품을 타가는 「쭉더기」파의 전법. 손님들 틈에 끼여 멍청히 앉았다가 나올 때 겨울 1, 2개의 답례품을 받아들고 나오는 구차스런 방식은 이미 옛날얘기.
「케이크」부대는 5·16 혁명 후 당국이 내건 「간소화 운동의 부산물」이라고 J예식장의 오연섭 전무는 말한다. 결혼식에 피로연이 빠지고 답례품을 쓰게되면서 「케이크」부대가 부쩍 늘었다는 것.
서울에만도 40여(협회 가입17개소)나되는 예식장 주변에 2백여 명의 「케이크」꾼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들은 상오 10시쯤 명동성당 주위에 모여 서로 정보를 나눈다. 4년 동안 「케이크」부대에서 진공을 세운 전모여인(33·동대문구휘경동)은 『교회에서 결혼식이 있다는 정보가 제일 반갑다.』고 했다.
교회에는 경비원이 없이 마음놓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4, 5년 전만 해도 이들은 결혼「시즌」에 하루 2천원 벌기는 누워서 떡먹기 였다. 그러나 예식장마다 5, 6명씩의 경비원이 생기면서 하루 5백원 수입도 어렵게 됐다.
Y예식장 단골 이모여인(36)은 「다이어」반지에 금목걸이 까지한 숙녀차림-.이 여인은 지난 봄 어느 일요일 하루에 3천 8백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때부터 이 여인은 꾼들로 부터 「금메달」이라 불리었다. 「케이크」꾼들 가운데서 최고의 수입을 올려 「챔피언·타이틀」을 얻은 것이다.
예식장 주변에는 이들이 가로챈 답례품을 사들이는 「보따리부대」가 도사리고 있다. 종로J예식장과 S예식장 사이의 골목은 「보따리부대」의 요새. 70∼80원 짜리 답례품이 「보따리부대」에 넘어 갈 때는 20∼30원. 이것이 다시 40∼50원씩 시장도 매상에 넘어가고 길거리에서도 소매된다. 지난봄 종로경찰서에 잡혀온 나모씨(41)는 6식구의 아버지. 『밑천 없이도 밥벌이는 된다는 이웃 노인의 말을 듣고 따라나선 것이 「배운 도둑질」이 돼버렸다.』고 얼굴을 붉혔다.
경찰은 이들을 경범죄 처벌법으로 다스리지만 『치사하게 벌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회』가 오기 전에는 뿌리를 뽑기 힘들다고 말한다. 결국 시민들이 이들의 숫법을 미리 알고 속지 않는 것이 얌체족을 없애는 지름길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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