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K의 횃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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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의 시민들은 지금 충격과 분노와 비탄에 휩싸여 있다. 「런던」의 BBC방송은 정규「프로」를 중지하고 RFK(로버트·케네디)의 저격사건을 알렸다. 「뉴스」를 들은 「런더너」들은 .자정의 잠자리에서 일어나 미국대사관 앞으로 몰려들어 술렁거렸다.
「키징거」서독수상은 『저주할 시국』라고 암살 음모를 증오했다.
「파리장」들은 통신사에 전화를 걸고 상보를 알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도꼬」의 신문사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국의 조간신문들도 분초를 다투어 긴급호외를 발행했다. 「라디오」들은 불과 몇 마디의 속보도 빠뜨리지 않고 임시「뉴스」를 들려주었다. AFKN(미군방송)은 몇 시간 전의 「캘리포니아」주 예선실황을 중계하며 RFK의 저격장면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마치 핵과 음처럼 「아나운선 의 음성 저쪽에서 들리는 『위·원트·케네디! (We Want Kennedy) 위·원트·케네디!』라는 군중의 절규는 더 한층 충격을 북돋워 주었다.
RFK의 인상은 언제나 정열과 박력과 지성에 넘친 그것이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 처럼 되어버린 격낭 같은 장발, 42세의 젊은 활력, 명쾌한 언조. 그것은 「존슨」대통령의 주름살 많은 얼굴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는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듯 언제나 바람을 몰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레츠·콘티뉴!』 (자, 계속합시다』를 의치는 JFK(존·케네디)의 재기와도 같았다. 월남전의 지루한 계속, 「달러」의 붕괴. JFK를 잃은 뒤의 허탈, 세대와의 공허감. 이런 「무더위」속에서 RFK의 등장은 통쾌한 「팡파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가 흉탄에 쓰러진 충격은 분노로 뒤바뀌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이상향처럼 생각되는 미국에서 불과 몇 년 사이에 대통령이 암살되고, 또다시 민권연동자가 총탄에 쓰러지고, 이제 유력 대통령후보 마저 저격 당하게 된 것은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극단의 의사가 한 표에 의해서가 아니라 권총에 의해서 표현되는 사회는 진실로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 미국에의 회의는 새삼 깊어진다. 1968년 6월5일은 미국의 가슴에 또 하나의 못을 박은 고통의 날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고 「케네디」대통령은【『횃불은 새 세대의 손에 전달되었다』고 선언했었다. 지금 지하의「케네디」는 『횃불이여. 꺼지지 말라』고 기도할 것이다. RFK의 회복을 우리도 충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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