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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눈물의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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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 일 년 전 오늘인 듯싶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땀과 뒤섞여 내 입가로 흘러내렸다. 맛이 짰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에 있는 생장드피에드포르를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기 시작해서 때론 눈보라 속에, 때론 폭우 속에, 또 때론 살을 데일 것 같은 뜨거운 태양 속에서 걷고 또 걸어 꼬박 44일째 되던 날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성지인 그곳에 발을 디딘 것이었다. 그러니 내 속에서 눈물이 날만도 하지 않았겠나. 물론 나의 발걸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사흘을 내쳐 걸어서 대서양과 마주하는 땅끝마을 피니스테레까지 기어코 갔다. 47일째 마지막 걷던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힘겹게 산등성이를 넘어 저 멀리 대서양이 손에 잡힐 듯 보였을 때 또 눈물이 흘렀다. 빗줄기가 땀과 범벅 되고 눈물에 뒤섞여 얼굴을 타고 내려 내 마른 입가를 적셨다. 정말이지 맛이 짰다.

 # 사우나에서 흘리는 땀은 밍밍하지만 힘겹게 산을 오르며 흘리는 땀은 짜다. 마찬가지로 눈물도 그저 값없이 흘릴 때와 달리 분투하듯 살고 나서 흘리는 눈물은 그 맛부터 다르기 마련이다. 눈물의 화학적 성분이야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눈물에 담긴 삶의 농도, 그 분투의 강도에 따라 맛이 다른 것이리라. 당연히 분투하는 삶이 흘리는 땀이 짤 수밖에 없듯이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흘리는 눈물 또한 짤 수밖에 없다.

 # 함민복 시인의 산문 같은 시 중에 ‘눈물은 왜 짠가’라는 것이 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 일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시다. 실례를 무릅쓰고 압축하면 이렇다. 설렁탕을 주문한 어머니가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하자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고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아들의 투가리에 국물을 부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어머니와 아들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다. 아들은 그만 국물을 따르라고 어머니의 투가리를 툭 부딪치다 순간 투가리가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깍두기를 마구 씹어 댔다. 그때 주인 아저씨는 조심스레 다가와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섰다. 그 순간 시인의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시인은 얼른 이마를 훔쳐 내리며 마치 눈물이 땀인 양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 난 땀, 아니 그 진짜 눈물을 훔쳐냈다. 그러곤 이렇게 중얼거렸다. “눈물은 왜 짠가?”

 # 눈물은 단지 서러울 때만 짠 게 아니다. 인간이 절실하고 절박할 때 흘리는 눈물은 짜게 마련이다. 결국 눈물이 짜고 안 짜고는 그 눈물을 흘리고 뿌리는 이가 겪어내는 삶의 절박함과 절실함에 달린 것이리라. 게다가 기뻐서 흘리는 눈물과 슬퍼서 흘리는 눈물, 감격해서 흘리는 눈물과 격분해서 뿌리는 눈물의 맛이 어찌 같겠는가. 세상을 살다 보면 억울한 일도 많고 속상한 일도 참 많다. 그런데 억울하고 속상할 때 흘리는 눈물은 짜지 않고 쓰다. 쓰디 쓴 눈물을 삼켜본 이들은 안다. 이미 까맣게 타버린 속이지만 그나마 눈물이라도 흘리지 않으면 정말이지 끓인 속이 자신을 다 태워버려 재도 남기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을. 그래서 화병이 도졌을 때는 울어야 약이다. 속이 죄다 타 까맣게 된 그때 흘리는 눈물은 쓰다. 그 쓴 눈물을 삼켜보지 않고서는 인생을 안다 할 수 없다.

 #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 짙은 색 선글라스를 낀 채 인파 북적이는 도심 한복판을 걸으며 눈물을 흘려본 이는 안다. 그 눈물 맛은 정말이지 말로 형언하기 힘든 맛이다. 그때 흘리는 눈물은 짠 것만도, 쓴 것만도 아니다. 언젠가 후식으로 먹어본 미네랄 아이스크림의 맛이다. 단맛과 짠맛이 묘하게 뒤섞인 그 맛! 영혼이 흘리는 땀에 다름 아닌 눈물의 맛은 곧 인생살이의 맛 아니겠는가.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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