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경제] 장등석재 노군자 사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5면

석재산업은 대표적 3D업종 하나다.가로·세로가 2∼3m씩 되는 큰 돌을 가져다 자르고 깎고 다듬는 것은 보통 힘겨운 일이 아니다.때문에 어지간한 남자들도 오래 버티지를 못하고 떠나 가는게 현실이다.

전북 익산시 낭산면에서 장등석재를 경영하는 노군자(魯君子.60)사장은 석재업계에서 여장부로 불린다.

전국 최대 규모라는 함열.황등지역의 2백50여개 석재업체들 가운데 홍일점(紅一點)사장일 뿐 아니라 지난해 20여억원의 매출로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 이 실적은 3~4년 전부터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값싼 중국산 제품 앞에 주변업체들이 속속 무릎을 꿇는 가운데 이뤄낸 것이다.

그녀는 교육자 출신이다. 30여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그녀가 석재업계에 뛰어든 것은 10여년 전. 1994년 남편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엉겁결에 공장을 떠맡게 됐다.

"'현장을 모르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독한 마음을 먹고 오전 4시면 일어나 공장으로 출근했어요. 또, 직원들이 나오기 전에 혼자서 쓸고 닦고 청소하면서 공장 구석 구석을 익히는 한편 기름을 치면서 기계 구조를 머리에 넣었어요. "

작업복을 하루 10여벌씩 바꿔 입어가면서 직원들과 함께 돌을 자르고 깎았다. 이 때문에 그녀는 1년만에 기계소리만 듣고도 어디가 고장인지를 알 정도의 전문가가 됐다.

직원들과 점심, 오전.오후 새참 등 세끼를 공장서 함께 먹는 '한솥밥 경영'을 했다. 식사를 하면서 집안의 크고 작은 애경사를 들어 때로는 해결사 노릇을 하고 때로는 어머니처럼 훈수를 두자 절로 가족 같은 친밀한 관계가 형성됐다.

또 고객과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고 노력했다. 납품 기일.물건 규격 등을 어김없이 지켜 현장소장들로부터 "장등 석재는 믿고 쓸 만하다"는 명성을 쌓았다.

"한번은 관청에 4천여만원어치의 물건을 납품했는데 '하자가 생겼다'는 연락이 왔어요. 교통사고로 누워있다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잘못된 것을 가려내고 바로잡았지요. 이처럼 정직한 태도가 담당 공무원들의 호감을 사 7억원 정도의 공사를 더 따내는 전화위복이 되기도 했어요. "

魯사장은 회사를 처음 떠맡았을 때보다 매출이 10배 이상 늘어난 알짜기업으로 키웠지만 지금까지도 화장품을 자기 손으로 직접 사본 적이 없이 자녀들이 쓰고 남은 것이나 샘플을 받아 사용할 정도로 검약하게 생활한다.

그녀는 "현재 국내 석재업계는 가격이 국산제품의 절반에 불과한 중국산이 밀물처럼 들어와 전체 시장의 80~90%를 차지할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라며 "이 어려움을 돌파하려면 품질로 승부하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이런 노력의 하나로 장등석재는 지난해 국내 최초로 야광경계석을 개발해 벤처기업으로 지정받았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이 경계석은 밤중 캄캄한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이 도로 옆 보도블록.축대 등과 부딪쳐 발생할 수 있는 교통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魯사장은 "지금까지 주로 생산해온 건자재나 조경용 석재는 물론 돌가습기.돌솥.돌빨래판 등 생활용품을 비롯한 모든 석재용품을 갖춘 '돌 백화점'으로 변신을 해 올해는 지난해보다 두배 많은 40억원의 매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보였다.

익산=장대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