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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조상님앞에 엎디어 읍하옵니다.
진작에 찾아와 뵈었어야할 것이건만 입에 풀칠하기에 바쁜 저로서는 마음만은 태산같았사오나 어쩔도리가 없었읍니다.
그저 불효의 소치라 여기시옵기를.
하오나, 은의자추만한 사람을 찾아볼수도없는 이제는이런 불효쯤이야 눈감아 두실수 있는 게 아니겠읍니까.
특히나 요새처럼 철도사고며, 차사고가 심할때면 그저 집안에 들어앉아 보신하여 가통의 계승에만 유감없도록 하는게 오히려 효도가 아니겠습니까.
하오나, 조상님께서 일상에 자랑하시던 금수강산을 온데간데없이 날려버린 죄를 씻을 길이 막막하여 이번만은 불효자가 큰마음먹고 온것입니다.
다만 전 같으면 제상위에 올렸을 주, 과, 포, 산, 병, 면, 자의 그어느 하나도 이번에는 드리지 못하는것을 너무 서운타 여기지 마시옵소서.
요새는 술이든 뭐든 유독소를 넣어 팔아먹는 불한당이 날로 늘어 행여나 조상님이 두번 죽음을 당할까 염려돼서 입니다.
불효자야 기왕에 그나마 살겠다고 오장육부를 다 팔아먹은 몸, 한번 죽든 뭐 아쉬울게 있겠습니까.
그래 조상님께서 즐기시던 독주를 제가 이렇게 대신 마셔 드린다는게 저로서의 효심의 표현이 아니겠읍니까.
가상타 여기옵소서.
군더덕같사오나 또하나 불효자가 모처럼 조상님 뵈러 온 까닭인즉 하도 세상이 어수선하여 이제 또 언제 조상님을 찾아 뵈올지 아득한 때문이옵니다.
서울은 앞으로 반요채화 되고 강남에 제2의 서울이 생긴다합니다.
지당한 얘기인줄은 아옵니다.
하오나, 길을 닦고「빌딩」이들어서면 그나마 푸른지대는더욱 좁아들게 아니겠읍니까. 아니 조상님의 이 안식처도 언제 사라질지 참으로 송구스럽기 한이 없사옵니다.
하오나, 왜 남처럼악착스럽게 살만한 배짱을 키워주시지 못했는지 그게 한스럽고 원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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