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같은 좋은 글 베껴 써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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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좋은 글이란 쉽고, 짧고, 간단하고, 재미있는 글입니다. 멋 내려고 묘한 형용사 찾아넣지 마십시오. 글 맛은 저절로 우러나는 것입니다. 치장한 글은 독자가 먼저 알아봅니다.”

 15일 오후 7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 연단에 선 유홍준(64·사진) 명지대 교수는 ‘좋은 글’을 이렇게 정의했다. 유 교수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출간 20주년 기념 자리였다. 1993년 1권 『남도답사 일번지』가 출간된 이래 2012년 7권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까지 모두 330만 부가 팔린, 국내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다. 그는 오는 7월 일본 편도 출간할 예정이다. 이날 강연회에는 추첨으로 선정된 500명의 독자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주제와 독자를 정해놓고 씁니다. 짧은 글은 짧은 문장으로 쓰고, 긴 글은 긴 문장으로 쓰고요. 가능한한 접속사 없이 씁니다. 완성된 원고는 한숨 돌리고 다시 봅니다. 좋은 글 베껴 써 보세요. 나는 워드프로세서 익히느라 알퐁스 도데의 ‘별’과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200번씩 베껴 썼습니다.”

 유 교수가 밝힌 글쓰기 비결이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 습관도 소개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밥 먹는 것도 잊고 계속 씁니다. 중간에 다른 일을 하다가 이어 쓰면 글이 짜깁기가 돼요. 문법과 구어체 표현이 충돌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구어체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제 글을 만연체도 아니고, 화려체도 아니고 ‘수다체’라고들 하죠.”

 그는 독자를 ‘갑’에, 필자를 ‘을’에 비유했다. “필자들이 가끔 실수하는 것은 독자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독자는 성실하게 책을 대하지만, 언제든 책을 덮어버릴 준비가 돼 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유 교수를 만났다.

 - 글쓰기 강연은 오늘이 처음이라고 들었다.

 “나는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많은 독자들이 글쓰기 비법을 물어오길래 그동안 생각한 걸 정리해 봤다. 인터넷을 통한 글쓰기 등이 늘면서 글쓰기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 글쓰기의 핵심이라면.

 “콘텐트다. 내용은 충실하고 정보는 정확해야 한다. 내용이 형식보다 중요하다. 형식이 약해도 내용이 충실하면 독자는 용서한다.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언제나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글쓰기가 돼야 한다.”

 - 오는 7월 출간하는 일본 편은 어떤 내용인가.

 “지난 20년 동안 일본 속 한국 문화를 답사해왔다. 일본 편 1권은 규슈 편으로 ‘빛은 한반도로부터 왔다’가 주제이고, 2편은 아스카·나라 편으로 ‘들판에 백제 꽃이 피었습니다’가 주제다.”

 -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다. 책 발간이 파장을 일으킬 것 같은데.

 “이번 책은 일본인들이 더 재미있게 읽을 것으로 본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사를 성공적으로 복원해야 한·일 관계도 정상화될 수 있다.”

 - 문화유산답사기 발간 20주년을 맞은 소감은.

 “시리즈를 잘 마쳐야겠다는 의무감이 더 커졌다. 한국 편은 12권까지, 일본 편은 4권까지 낼 생각이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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