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권 장세,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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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호 20면

40대 전문직 회사원인 박모씨는 요즘 “주식 투자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1년 넘게 오르락내리락만 반복하는 박스권 장세에서 돈 버는 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는 올 2월 3일 코스피 지수가 1930대일 때 1.5배 레버리지 인덱스 펀드에 1억원을 넣었다. 보름 만인 같은 달 18일 코스피 지수가 1980선을 넘자 펀드를 환매했다. 보름 사이 그가 얻은 수익률은 4.66%. 그는 “은행 예금 이자가 연 3%도 안 되는데 보름 사이에 4% 넘는 수익을 얻은 게 어디냐”며 좋아했다.

인기 끄는 단기지수투자 어떻게

박스권에 갇힌 국내 증시를 활용하는 단기 지수투자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이후 코스피 지수의 최저점은 1860.83(지난해 11월 16일). 최고점은 2031.10(1월 2일)이다. 코스피 지수 폭이 170포인트 남짓한 좁은 박스권에서 횡보를 거듭한 것이다. 이 때문에 “주식 투자할 때가 아닌 것 같다”며 팔짱을 낀 투자자도 많은 상황. 하지만 전문가들은 “큰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박스권을 활용해 쏠쏠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단기 지수투자의 핵심은 박스권 파악이다. 올해 들어 코스피 지수는 1900~2000 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움직였다. 코스피 지수가 1900 근처로 떨어지면 “바닥”이라고, 2000 근처로 올라가면 “천장”이라고 다들 인식하는 상황이다. 지수가 1950선 아래로 내려가면 조금씩 지수 연계 금융상품에 투자금을 늘리고, 지수가 2000선 근처로 올라가면 투자금을 조금씩 회수하는 게 기본 방법이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상품은 상장지수펀드(ETF)다. 수수료가 0.1% 안팎으로 싼 데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쉽게 사고팔 수 있어서다. ETF 거래량을 보면 박스권 활용 전략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난달 4일 북한의 전쟁 위협으로 코스피가 급락하자 레버리지 ETF에는 전날 대비 5배 이상으로 돈이 몰렸다. 이날 하루에만 삼성자산운용의 ‘코덱스 레버리지 ETF’에 2300억원 가까운 자금이 몰릴 정도다.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 지수가 오르면 상승폭의 1.5~2.2배의 수익을 안겨주는 레버리지 인덱스 펀드도 박스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코스피 지수가 1931.77로 떨어졌던 2월 7일부터 2024.64로 올랐던 2월 20일 사이의 수익률을 살펴봤더니 코스피 200 지수를 추종하는 국내 인덱스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3.04%, 레버리지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5.89%였다. 이은정 하나은행 도곡센터 골드PB팀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수가 급락하면 인덱스 펀드에 가입했다 지수가 올랐다 싶으면 이를 환매하는 방식으로 예금보다 2~3배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 고객이 꽤 된다”며 “최근 일부 기업의 실적 쇼크로 종목 투자보다는 지수 투자가 안정적이라 본다”고 말했다.

목표 수익률 넘으면 채권형 전환 펀드도
지수가 오르면 지수 상승세를 좇는 레버리지 투자를 하고, 지수가 내릴 때는 하락장에 베팅하는 인버스 투자를 하는 교차 투자도 인기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으로 1년 사이 가장 많이 팔린 ETF는 ‘코덱스 레버리지 ETF’와 ‘코덱스 인버스 ETF’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박스권 장세가 지속될 걸로 전망되는 만큼 단기 지수 투자가 유용할 걸로 전망한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저성장 국면이 심해질수록 코스피 지수는 변동성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며 “하반기에도 단기 지수투자 전략이 무리 없는 선택이 될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뚜렷한 만큼 포트폴리오의 일부만 단기 투자에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많다. 전균 삼성증권 책임연구위원은 “지금처럼 장기간 지수가 박스권에서만 움직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계속 자금이 풀리고 있는 만큼 지수가 박스권을 탈출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투자 비중을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스권 지수 투자는 장기 투자가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특히 레버리지 인덱스 펀드의 경우 오래 투자할수록 수익률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레버리지 펀드는 지수가 오르면 1.5~2.2배의 수익을 내지만 지수가 내릴 때도 역시 1.5~2.2배의 손실을 내는 데다 기간 등락률이 아니라 일일 등락률에 따라 손익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첫째 날 지수가 5% 올랐다가 둘째 날 5% 내렸다면 1.5배 레버리지 인덱스 펀드는 첫째 날 7.5%의 수익을 올리고 둘째 날 7.5%의 손실을 보는 셈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31개 레버리지 인덱스 펀드의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7.22%. 이 기간 코스피 지수는 40포인트 남짓 떨어지는 데 그쳤지만 지수가 등락을 반복한 탓이다.

실시간으로 지수를 챙겨보며 상품 가입과 환매를 반복하기가 어렵다면 ETF 랩 같은 자동 매매 방식의 금융 상품에 가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주가 지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에 맞춰 투자 대상의 매수 규모를 조절하거나 채권 주식 등 자산 투자 비중에 변화를 준다. 우리투자증권의 ‘우리스마트인베스터 레버리지 분할매수 목표전환형 펀드’는 레버리지 ETF를 분할 매수해 1년 누적 수익률이 5%를 넘으면 채권형으로 전환,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한다. 현대증권의 ‘현대에이블 플렉서블 ETF 적립식랩’은 기준 지수 대비 지수가 내려가면 구간별로 레버리지 ETF 비율을 점차 늘려 투자하고, 지수가 오르면 매수 비중을 축소해 수익을 실현하면서 리스크를 관리한다. 대우증권의 자산배분형랩 ‘폴리원’은 시장 상황에 따라 주식형 ETF와 채권형 ETF의 비중을 조절한다.

김분도 대우증권 랩운용부장은 “사람의 이성으론 시장이나 주가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경제지표를 활용해 주식 시장의 사이클을 추적하는 모델을 만들었다”며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200여 개 지표를 활용해 코스피 지수 움직임과 비교한 뒤 지수와 가장 유사하게 움직이는 20여 개 지표를 추려 점수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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