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연구 을이던 한국, 리딩그룹 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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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키루나에서 북극이사회 각료회의를 마친 후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왼쪽)에게 마이크를 건네고 있다. 가운데는 에르키 투오미오야 핀란드 외교장관. 이번 회의에서 한국은 북극이사회의 영구 옵서버가 돼 국제사회의 북극 관련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 [AP=뉴시스]

한국이 북극 관련 국제협의체인 ‘북극이사회’의 영구(정식) 옵서버 국가가 됐다. [중앙일보 5월 15일자 1, 8면]

 15일 오전(현지시간) 스웨덴 키루나에서 열린 제8차 북극이사회 각료회의에서 한국은 중국·일본·이탈리아·인도·싱가포르 등 5개국과 함께 영구 옵서버의 지위를 얻었다. 2008년 북극이사회 임시 옵서버 자격을 받은 지 5년 만이자 북극 연구를 시작한 지 20여 년 만의 성과다. 함께 신청한 유럽연합(EU)과 국제수로기구(IHO),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 등 7개 국제기구는 심사가 보류됐다.

 신동익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은 “북극이사회 8개 회원국이 북극권 이익 증진과 이에 대한 전문성 보유 여부, 북극과 관련한 국제협력에 기여한 성과 등을 검토해 한국에 정식 옵서버 자격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영구 옵서버 국가가 되면 북극과 관련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언론사 정치부장단과의 만찬에서 “북극 항로 개척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데 더 많은 접근 기회를 얻을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은 “(만찬 장소로) 막 들어오는데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며 “이사회 옵서버 참여를 위해 회원국, 의장국들에 그동안 부탁을 했었다”고 소개했다.

 한국의 영구 옵서버 진출은 쉽지 않았다. 과거에는 영구 옵서버 신청 국가를 개별 심사했으나 이번부터는 이사국들이 개별 심사를 하자는 쪽과 신청국가를 패키지로 묶어 일괄 심사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현지에선 “‘All or nothing(모두 통과 아니면 모두 탈락)’의 상황”이라는 소식도 전해왔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러시아·캐나다 등 8개 이사국이 15일(현지시간) 새벽까지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며 “우리나라의 정식 옵서버 진출을 반대하는 국가는 없었지만 통과를 자신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의 공격적인 북극 진출을 두고 미국 등 일부 국가가 우려를 표해 다른 나라들까지 통과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현지시간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5시)부터 분위기가 바뀌어 한국을 포함한 6개국은 영구 옵서버로 승인하고 EU 같은 국제기구는 보류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을 견제하느라 다른 나라들까지 심사를 보류하거나 탈락시키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난관 끝에 북극이사회 영구 옵서버 자격을 얻으면서 앞으로 한국은 북극이사회의 모든 회의에 참여할 자격을 얻었다. 최신 북극 정보에서 배제되지 않게 됐다는 의미다. 북극이사회 산하 6개 실무위원회(북극 오염 대책, 북극 모니터링 평가, 북극 동식물 보전, 비상사태 예방준비 대응, 북극 해양환경 보호, 지속가능 개발작업)의 세부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그 밖에 이사회 각료회의 결정 사안에 대한 영향력 행사도 가능해졌다.

 남극과 달리 국제규범이 확정되지 않은 북극은 북극이사회 중심으로 자원 개발이나 항로 개척, 영토 확정과 같은 국제규범이 마련될 예정이다. 한국해양연구원 김웅서 박사는 “북극과 관련한 국제규범의 수립 과정에서 한국이 배제되지 않고 의견을 개진해 가면서 변화를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혜택”이라고 평가했다.

 남상헌 극지연구소 미래전략실장은 “이전까지는 이사회의 높은 벽 때문에 초청받지 않으면 참석도 못했지만 이제는 정식 옵서버 국가로서 프로젝트 제안 등 북극 개발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기회를 얻었다”며 “북극 연구개발의 교두보를 놓은 셈”이라고 했다.

 외교부는 북극의 해빙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북극항로 및 자원 개발을 둘러싼 북극권 국가들의 규제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영구 옵서버 진출이 실현됨으로써 향후 북극항로 상용화의 길이 열리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조사·연구 및 장기적으로 북극권 개발에 뛰어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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