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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산다(75) 팔린다는 운현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운현궁 뒤뜰의 대지일부가 일본대사관에 매도될 것 이라고 한다.
운현궁은 대원군이 거처하던 곳이요, 대원군은 이곳에서 철저한 배일정책을 펴왔다. 그의 왜국정책은 강력하여 대원군이 집권하는 동안 일본은 감히 이 땅에 발도 붙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54세로 척촉인 민씨들에게 몰려나자 일본은 곧 무력으로 이 나라를 협박하고 병자년(1876) 2월3일 일본전권 흑전청봉, 정상형 등을 보내 12조로된 병자수호조약을 체결케 했던 것이다.
이 조약에는 15개월 이내에 조선안에 일본공관을 설치한다는 항목이 있었다. 일본공관이 처음 설치된 것은 이듬해인 정축년(고종14년-1877) 이었다. 조선 조정은 일본공관을 서대문밖 청수관에 정하고 그해 10월 일본공사 화방의질이 청수관에 들었다. 이 청수관 일본공관이 불탄것은 임오년(1882) 의 군란 때었다. 임오군란의 배후에는 대윌군이 있었다.
임오군란후 일본은 조선조정을 검박하여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고 공관을 교동으로 옮기며 군대를 주둔케 했다.
일본의 교동공관은 다시 갑신정변(1884)으로 불탔다.
일본공사 죽첨은 본국으로 달아났고 한성조약이 체결되었다.
한성조약에는 『일본공관은 신기지로 이축함을 요구하는바 그 중축, 중건에 있어 조선국이 2만원을 지불하여 공사비에 충용토록 할것』이라는 조항이 있다. 일본의 주한공관사는 곧 그들의 한국침략사이며 대원군의 대일 투쟁사이다.
일본공관이 처음으로 설치된후 금년이 꼭91년, 만일 운현궁에 일본대사관이 들어선다면 그것도 일본사람으로서는 흔쾌한 일일는지 모르나 뜻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다시 한번 아프게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때 정부에서 그 대지를 매수하여 문화인을 위한 기관이라도 설치해 준다면 인심을 모으는 한 방편이 될것이라 생각하고 여기 건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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