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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7000만 명 거대시장 뜬다 … Go Go West!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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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둥수이먼대교와 연결해 량장대교를 구성하게 될 치엔시먼대교가 기본 골격을 드러내고 있다. 충칭시는 급속도로 증가하는 교통량을 감안해 10개의 교량을 건설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충칭=박진석 기자]

충칭(重慶)은 곡선의 도시다. 오랜 세월 동안 굴곡진 언덕배기들과 자링장(嘉陵江)·창장(長江·양쯔강)이 유려한 선을 만들면서 도시의 입면(入面)과 평면(平面)을 구성해 왔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조우한 충칭은 어느 새 직선의 도시가 돼 있었다. 촘촘하게 올라선 고층 건물들과 공사용 크레인들이 수직의 숲을 이뤄 빈 땅 한 뙈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새롭게 중국 경제개발의 최전선이 된 중국 서부, 그중에서도 핵심 지역인 ‘파촉’(巴蜀·충칭과 쓰촨성의 옛 지명)과 ‘장안’(長安·시안의 옛 지명) 땅을 한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누빌 채비를 하고 있다. 이미 이들 지역에 생산 및 사업 터전을 만든 기업들만 삼성전자·현대차·한국타이어·SK·LG·풀무원·금호아시아나·포스코 등 20곳에 가깝고 지사나 사무소를 둔 기업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중국 1위 한국타이어, 3공장 가동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는 한국타이어 충칭 공장을 찾았다. 도심에서 차로 한 시간여를 달리자 광활한 벌판 위에 자리 잡은 거대한 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의 4개 신구(新區) 중 하나인 량장(兩江) 신구에 위치한 이 공장은 최첨단 자동화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타이어 생산과 분류, 검사작업까지 모두 자동화 공정에 따라 진행됐다. 생산된 타이어 전체를 전수검사하기 때문에 손톱만 한 이물질까지 찾아내 제거할 수 있으며 바코드가 초기 생산단계에서부터 자동 입력돼 문제 발생 경위를 역추적할 수도 있다. “100% 완벽한 제품들만 출시된다”는 장맹근(54) 공장장의 자랑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한국타이어는 이미 중국 교체용 타이어(RE) 시장에서 13%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연안 지역인 장쑤(江蘇)성 화이안(淮安)과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에 2개 공장도 운영 중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한국타이어가 내륙 깊숙한 곳에 새 공장을 만든 것은 서부지역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 때문이다. 장 공장장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서부지역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2015년이면 이 곳에서만 연간 1150만 개의 타이어가 생산돼 충칭의 강변도로부터 티베트와 신장의 고산지대까지 서부지역 곳곳을 누비게 된다.

“성장 가능성 무한한 시장 선점”

충칭의 입지를 탐낸 한국 기업들은 더 있다. SK종합화학은 2015년까지 연산 20만t의 중국 최대 규모 부탄디올합작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금호석유화학도 연산 1만t 규모의 불용성 유황 및 연산 3만t 규모의 이황화탄소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포스코 충칭 가공센터(POSCO-CCPC)는 충칭에 본거지를 둔 창안자동차그룹 등에 연간 11만t의 자동차용 강판을 판매하고 있다.

현대차, 70만 대 상용차 공장 건설

 충칭 시내로 진입하자 한국 차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다. 종류도 위에둥·랑둥·투싼·스포티지R·K5·쏘나타EF·세라토 등 신형과 구형을 총망라해 폭넓은 인기를 짐작하게 했다. 재중동포 박일남(28)씨는 “현대·기아차가 품질이 좋고 가격 경쟁력도 있어 이곳에서 인기가 굉장히 높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도 서부지역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충칭과 인접한 쓰촨(四川)성 쯔양(資陽)에 ‘쓰촨현대’라는 이름의 상용차 합작공장을 짓고 있다. 현대차는 중국 상용차 시장 진출 교두보인 이곳에서 2020년에 버스, 트럭 등 상용차 70만 대를 양산할 계획이다. 서부지역에 승용차용 제4공장을 짓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쓰촨성 진출의 길을 튼 국내 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1995년 청두(成都)에 진출한 금호고속은 현재 청두와 쓰촨성 이빈(宜賓)에 총 3개의 합자기업을 운영하면서 수백 대의 고속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월 한국계 은행 최초로 청두 분행(分行)을 열었다. 올해 8월에는 롯데백화점 청두점이 문을 연다. SK그룹은 2011년 청두에 SK 서부본사를 개설하고 베이징(北京)과 함께 양대 전략축으로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안(西安)을 중심으로 하는 산시(陝西)성이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시안에 첨단 10나노급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공장을 짓기로 하면서다. 총투자액이 300억 달러에 달하는 이 사업은 외국기업의 중국 단일 투자 건으로는 사상 최고액이다. 산시성에는 이 밖에 LG상사·심텍·KMW·SK텔레콤·다산네트웍스 등이 터를 잡았거나 본격 사업을 준비 중이다.

장맹근 공장장은 한국 기업의 ‘서부행 러시’에 대해 “기업은 발전에 편승해야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50년 대계(2000~2050년)인 ‘서부대개발’ 정책이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은 눈부신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상위 10개 지역 중 7개가 서부지역 성시(省市)였다. 충칭(13.6%)이 3위였고 산시성과 쓰촨성도 각각 5위와 7위였다. 이들 3개 지역의 최근 5년간(2007~2012년) 경제성장률은 125~151%에 달한다. 중국 성장의 상징과도 같은 장쑤(107%)·저장(84%)·광둥(79%)을 압도하는 수치다. 게다가 중국 서부지역은 인구가 3억7000만 명으로 러시아·독일·프랑스·영국 인구를 모두 더한 숫자보다 많다. 개인 소득증가 추세도 빠르며 지역민들의 소비성향도 높은 편이다.

 중국 측 ‘당근’도 매력적이다. 시안시 정부는 삼성전자 공장 유치가 확정된 후 3개월 만에 공장 부지 내의 7개 촌락을 철거하고 이곳에 살던 4473호, 1만여 명의 농민을 속성으로 이주시켰다. ‘시안속도’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파격적인 조치였다. 충칭시 정부는 량장 신구 내에 한중산업단지를 별도로 조성해 줬고 ▶기업소득세 감경 ▶지방세 3년간 면제 ▶토지가격의 10~50%를 보조금으로 환급 등 풍성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초장거리 화물전용 철도 2개 노선이 개통하면서 이 지역이 ‘신(新)실크로드’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2011년 충칭-시안-우루무치-러시아-폴란드-독일 뒤스부르크를 잇는 15~18일 여정의 충칭-유럽 철도가 개통한 데 이어 지난 4월에는 청두에서 폴란드 우지를 12~14일에 주파하는 청두-유럽철도(蓉歐快鐵)가 운행을 시작했다. 이대용 KOTRA 청두무역관 과장은 “미국 경제잡지 ‘포춘’이 주최하는 ‘포춘 글로벌 포럼’의 올해 개최지가 청두일 정도로 중국 서부지역은 세계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도 더 적극적으로 이 지역을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칭·시안=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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