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계산 착오 박정환, 불로 뛰어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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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15보(157~173)=바둑이 구비구비 흘러가고 있습니다. 중앙에선 백 돌 15개가 잡혔고 우하에선 흑 돌 8개가 죽었습니다. 그 죽음이 만들어지기까지 실로 파란만장했습니다만 이제 바둑은 종착역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누가 유리한 걸까요? 어떤 기술보다도 중요한 ‘계산’이란 종목이 눈앞에 놓였습니다. 박정환 9단은 계산을 아주 잘합니다. 예전엔 이창호 9단이 이 방면에 독보적이었습니다만 요즘 젊은 일류 기사들은 다 잘합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 판에서 박정환은 몇 번이나 미스터리를 보여주는데 지금부터의 ‘사고’야말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미스터리였습니다.

 구리 9단은 157로 뛰어들어 161까지 벌어들인 다음 163으로 전개했습니다. 163이 놓이면 흑의 약점이 커버되므로 164를 선수하더라도 귀의 백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참고도’ 흑1 치중하고 3으로 젖히는 수가 있지요. 백4가 맥점입니다만 흑5로 두면 결국 패가 됩니다. 따라서 흑은 A에 두어 귀를 살아두는 게 정수입니다. 그러나 박정환은 좌변 170으로 달려가 수를 내기 시작합니다. 이건 무슨 일인가요. A로 살아두면 바둑을 지는 건가요? 그래서 승부수를 던지는 건가요? 아닙니다. 검토실은 “백이 이긴다”고 합니다. 1집 반 정도 남는다고 합니다.

 ‘계산’이란 이렇게 중요합니다. 계산이 어긋나면 만사가 어긋납니다. 백은 자신이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었습니다. 이제 수가 안 되면 잔뜩 보탰으니 지는 거지요.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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