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NCS로 능력중심사회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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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영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

대학을 졸업해도 많은 젊은이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고등학교 3년 잘 준비해 대학을 간다고 해도 인생이 보장되지 않은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취업률이 대학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의 주요 척도가 되면서, 많은 대학에서 교수는 물론 총장까지 나서서 4대 보험이 되는 인턴 자리까지도 아쉬워서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에 의하면 10위권 대학을 나와야만 생애소득 차원에서 대학에 대한 투자에서 수익을 볼 수 있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잘 안 되는 현실에서도 청년들은 무조건 대학을 가려고 한다. 이미 학력이 노동시장에서 인재를 가려내는 신호 기능을 상실했는데도 학부모·학생들이 아직도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노동시장에서 학력을 대체할 적절한 인재 발굴·활용 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근혜정부가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 ‘학벌이 아닌 능력 중심의 사회 구현’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수단으로 국가직무능력표준(National Competence Standards: NCS) 체제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정부가 2001년에 NCS 도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으나 아직까지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자격기본법 2조에 따르면 NCS는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 기술, 소양 등의 내용을 국가가 산업부문별, 수준별로 체계화한 것’이다. 영국·호주 등 많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NCS 제도를 축으로 직업교육훈련체제를 산업 수요에 맞춰 혁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한국단자공업 등에서는 NCS를 사내훈련과 인사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협업체제를 구축해 올해 중에 68개 직무의 NCS를 개발하고 내년도에는 나머지 182개 직무에 대한 NCS 개발을 완료하게 될 것이다.

 NCS 제도가 구축되면 현장의 수요에 부합되는 직업교육과 훈련이 교육기관과 훈련기관에서 이뤄진다. 각 직무에서 필요로 하는 표준화된 역량이 제시되고 관련 자격체계가 구축되기 때문에 재직자들의 자유로운 직장 간 이동이 촉진되고, 다양한 방법으로 상위 수준의 역량이나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된다.

 NCS 체제 구축은 일반적으로 국가자격체계 (National Qualification Framework:NQF)의 개편과 함께 이뤄진다.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직무능력을 NCS를 통해 표준화하고 이에 기반한 교육 및 훈련 과정이 자격제도를 통해 노동시장에서 통용되고 인정받아야만 근로자들의 학습의욕을 끌어낼 수 있다. 기업들도 이를 인재 활용의 신호제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NQF 체제가 성공적으로 구축된다면 평생학습계좌제 등 여러 평생학습제도 간에 연계성이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비효율이 없어질 것이다. 또 대학의 학위도 NQF 체제하에서 운영되므로 고등교육의 질 관리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대학 교육은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NCS체제 구축과 NQF 개편으로 대학 교육이 현장의 수요가 반영되고 학생들의 취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청년실업 해소 등 노동시장의 인력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고졸 취업 성공시대를 연 ‘선 취업-후 진학’ 정책도 NCS와 NQF체제로 뒷받침돼야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일하면서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는 선진국형 인적자원개발체제가 구축될 것이다.

 정부가 NCS, NCS에 기반한 교육과정 개발 및 NQF 개편에 현장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현장의 수요가 제대로 반영돼야 NCS 개발의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박 영 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