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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대기업 역할, 지금은 벤처가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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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요즘 청년들이 왜 벤처 창업을 하지 않느냐고요? 벤처를 하면 연대보증을 서야 하고 신용불량자가 되거든요. 부모님이 말립니다.”

 메디슨을 창업했던 벤처 1세대의 대표주자 이민화 KAIST 교수가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8일 서울 구로구 벤처아카데미 회의실에서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담담히 얘기를 들었다. 그도 벤처기업인들도 테이블 위에 놓인 도시락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밥보다 말이 먼저였다. 벤처인들은 그동안 품었던 불만과 건의를 한꺼번에 터뜨렸다.

 “정부 기관에 저희 교육 서비스를 소개하려고 하면 잡상인 취급부터 합니다. 영리 기업이라는 거죠. 그런데 삼성 스마트폰 솔루션은 환영하면서 왜 벤처기업 서비스는 무시하나요?”(이만희 아이앤컴바인 대표), “정부에 계신 분들은 벤처기업을 대기업과 동반성장해야 하는 종속적 개념으로 보고 있는데, 아닙니다. 1970~80년대 대기업의 역할을 (지금 벤처가) 해야 합니다.”(정준 쏠리드 대표), “창업 12년째입니다. 지난해 매출 270억원을 했는데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시작 못했을 겁니다.”(박병욱 제노레이 대표)

 임기호 엠티아이 대표의 ‘정권 특성론’에는 분위기가 무겁기까지 했다. “이런 얘기는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른바 진보정권에서 중소벤처가 활발했습니다. 보수정부에서는 지원책이 답답합니다. 지난 정부 때만 해도 대기업 이익을 중소기업과 나누자는 초과이익공유제를 왜 중소기업청이 반대합니까?”

 건의사항은 말 그대로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나왔다. 벤처기업을 매각할 때 증여세를 면제해 달라는 현실적인 요구에서부터 벤처업계 인력에 대한 인센티브, 순수하게 기술만 사고팔 수 있는 기술거래소 부활 등도 거론됐다. 시중의 유동자금이 기술벤처에 투자될 수 있도록 금융권 은퇴자를 벤처기업에 취업시키자는 아이디어도 주목을 끌었다.

 2시간이 훌쩍 흐르자 현오석 부총리가 마이크를 잡았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이르면 다음 주 발표할 벤처종합대책은) 굉장히 포괄적인 정책으로 하겠습니다. 생태계든, 금융이든, 세제든 거의 모든 것을 포괄할 겁니다.” 현 부총리는 간담회에 나온 벤처인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본인은 학생이니까 잘 가르쳐 달라는 의미다.

 벤처 활성화 대책은 이달 중 발표된다. 벤처기업을 매각할 때 경영권 프리미엄 등에 부과되는 증여세 면제 방안도 검토하고 창업 초기 투자인 에인절 투자에 대한 소득공제율 상한선도 개정 대상이다.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벤처기업 인수합병(M&A)에 대한 지원책이 많을 전망이다. 벤처기업 M&A 시장이 커져야 투자가들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고 벤처기업도 클 수 있다. 현 부총리는 벤처 창업은 물론이고 실패한 뒤 재도전할 수 있는 환경 마련도 강조했다.

 비트컴퓨터 조현정 회장은 “정보기술(IT) 기업이 벤처기업의 70%인데 지난 정부에서는 정보통신부가 폐지돼 처음부터 실망이 컸다”며 “현 정부의 창조경제의 핵심은 사실 벤처가 담당해야 하는 부분으로 정부의 대책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박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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